에필로그
1) 기다림의 끝에서 피어난 은혜
어릴 적 제 꿈은 화가였습니다.
시골에서 학원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지만, 종이에 공주를 그리며 마음껏 상상하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 우연히 제가 따라 그린 그림을 본 선생님께서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전교 회장이 멋진 수채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감탄만 했습니다.
‘이 친구는 왜 이렇게 잘 그릴까…’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오래 있지 못하고 곧 미술반을 나와야 했습니다.
그림에 대한 꿈은 제 마음속에만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대학보다 당장의 생계를 택해야 했던 현실 속에서 그 꿈은 점점 멀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스물세 살, 회사 동료가 대학 진학을 위해 사직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를 설득하고, 언니의 도움으로 학력고사를 치렀습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늦게 열린 저의 문이 드디어 열리는 듯했습니다.
기초도 없는 상태였지만 열심히 배우고 또 그렸습니다.
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2년간 일하다 결혼했고, 두 아들을 키우며 방송대 유아교육과까지 마쳤습니다.
화가의 꿈은 멀어졌지만, 붓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그린 첫 유화를 친구가 3만 원에 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이 중요해. 앞으로 더 그리게 될 거야.”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림 속 수국과 나팔꽃, 장미들은 그 시절의 저를 닮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뒷산 산책 중 만난 풍경을 사진에 담아 붓으로 옮겨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채화는 6세 반 아이들, 제가 맡아서 가르친 개구쟁이들의 모습입니다.
참고 견디며 때를 만나 피어난 꽃처럼, 저 역시 긴 세월을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의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만 붙들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우리 가족의 하루는 언제나 기도로 시작합니다.
거실에 모여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드리는 기도—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5편 3절)
짧은 기도 속에 오늘을 살아갈 힘이 담겨 있습니다.
큰아들은 출근하고, 남편은 주간보호센터로 향합니다.
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베란다의 화초들을 바라봅니다.
남편의 몸은 예전처럼 건강하지 않지만, 지금 이 모습 또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기도 속에는 늘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일가친지, 친구들, 그리고 우리 가족의 회복을 위해 애써 주신 분들.
특히 김해에서 함께 걷고, 자전거를 타며 제 건강 회복을 도와준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골목과 바람결이 아직도 마음에 선합니다.
멀리 이사했어도 그 고마움은 잊히지 않습니다.
살아오며 참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 모든 길 끝마다 저를 붙들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남편의 큰 아픔 이후 저의 세상적인 삶은 멈췄고, 저는 오롯이 남편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의 재활을 위해 병원에 가던 길에 넘어져 발목과 무릎을 다쳤지만, 입원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그저 통원 치료만 받으며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다쳤던 다리의 염증은 퇴행성 관절염이 되어 온몸으로 번졌고, 그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은 여전히 제가 없으면 일상을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었기에, 아픈 몸으로도 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함을 질렀던 날도 있었습니다.
목이 쉬도록 울부짖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침 햇살은 어김없이 창문을 두드렸고, 저는 또다시 남편의 하루를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제 마음은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든 일상을 순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2) 그리고, 기다림 속에서 다시 시작된 글쓰기
그러다 2년 전, 문득 동화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큰아들의 도움으로 컴퓨터 그림도 함께 만들며 열 편의 동화를 완성했지만, 무리한 탓인지 의욕이 꺾였고 그 후로는 조용히 살아내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올봄,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구토로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갔고 ‘전정신경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입원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부분 누워서 지내며 약을 먹고 겨우 남편을 돌보던 때,
우연히 알게 된 챗GPT를 통해 누워서 폰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낙서처럼, 편지처럼 썼던 글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그림도 다시 그리고, 묵상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몇 번의 탈락 끝에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메일함에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화면을 다시 열어보며 글자 하나하나를 더듬었습니다.
오래된 기다림이 한순간에 눈물로 바뀌었고, 그 눈물은 위로이자 격려가 되어 제 가슴 깊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날의 기쁨은 마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던 이방 여인처럼,
병든 딸을 위해 간절히 매달렸던 어머니처럼,
몇 번이고 반복해 문을 두드리는 기도 같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늦깎이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3) 마무리의 고백
누구든지 꿈은 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오십니다.
성경 속 시므온과 안나처럼—
오래 기다리며 주님의 때를 믿고 바라보는 사람들, 바로 저 자신처럼.
그 말씀처럼, 제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위로와 은혜로 심겨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 시편 46편 1절
이 길 끝에서 제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시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