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터널》8화

뿌리의 길과 정유를 노리는 자들

by 산여울 박유리





《황명 터널》

8화 뿌리의 길과 정유를 노리는 자들




1. 뿌리의 길


뿌리가 움직이며 흙을 밀어냈다.


흙벽이 스르륵 갈라지며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폭의 작은 통로가 생겼다.


아이들이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바라봤다.


선생님이 속삭였다.

“백합나무가… 우릴 기억한 거야.”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무가 우리를 지키고 있었던 거야.”


뿌리는 더 깊은 곳으로 이어졌다.

그 길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유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결정해요.

문을 두드릴지,

나무가 보여주는 길로 갈지.”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철문은 닫혔다.

그러나 뿌리 길은 열렸다.


그리고 그것은

백합나무가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길이었다.


뿌리길은 터널보다 깊었다.

나무는 그들에게 숨겨진 공간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다른 무언가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2. 흙 속, 숨겨진 길


뿌리 길로 내려가는 첫 발걸음은 두려움이었다.


땅 아래는 촉촉했고

흙냄새와 함께 백합나무 정유의 향이 섞여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동굴은 사람이 만든 길이 아니었다.

뿌리가 밀고, 돌이 뒤로 움직이며 길을 내는 그런 느낌.


유진이 중얼거렸다.

“언니… 나무가… 우리한테 길을 만들어 주는 거 맞지?”


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확신이 있었다.


선생님이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선생으로 살아온 모든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믿어진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유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백합나무는 말하지 않고,

길을 내어주는 존재였다.


길 끝에서 큰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에 뿌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중심에는 커다란 은색 줄기가 맥박을 치고 있었다.

마치 나무의 심장처럼.


하린이 가까이 다가가 손을 올렸다.

“따뜻해… 살아 있어.”


은색 줄기가 떨리며

미세하게 환한 입자가 공기 중으로 퍼졌다.


그 향이 닿는 순간

모두의 몸에서

피곤함과 떨림이 사라졌다.


정유보다 더 순수한 향,

유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정유는 나무의 피라면,

이 향은 숨결이었다.


그리고 나무는 소리없이 말하고 있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가져라.”


그때였다.

멀리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몸을 웅크렸다.


“저거… 터널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 아닌가?”

선생님이 말했다.

“정유를 차지한 사람들이… 안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 것 같아.”


유리는 심호흡을 했다.

“백합나무는 우리만 위한 길을 열었어요.

저 사람들에게는 이 길이 보이지 않을 거에요.”


하린이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리 언니…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유리는 천천히 답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무를 지배하려는 게 아니라

함께 살고 싶어 하니까.”


그 순간,

심장처럼 뛰던 은색 줄기가 잠시 멈췄다가…

부드러운 빛의 파동을 내뿜었다.

마치 "맞다" 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3. 배신의 흔적


뿌리길에서 돌아오는 길.


바깥 철문 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 내가 여기 터널 위치 알려줬잖아!”


하린의 얼굴이 굳었다.

“저 목소리… 혹시 지훈 오빠?”


지훈.

유리 일행 중 처음으로 떠난 사람.


‘이건 위험한 집단이야.’

그 말만 남기고 나갔던 사람.


선생님이 낮게 말했다.

“역시… 내부에서 정보를 준 거였어.”


문 너머에서 상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유는 거래가 될 수 있어.

그걸로 군대와도 협상할 수 있다고!”


유리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지훈은 백합의 향을 돈과 힘으로 바꿔버렸다.


그때, 백합나무의 뿌리가 다시 움직였다.


흙이 흔들리고

터널 안쪽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 나무는 복수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나무는 영혼의 냄새를 아는 존재였다.
아마도 안쪽의 비명 같은 소리는 나무에 의해

그 사람이 묶여 있을 거다. 괜찮아. 걱정 마.


유리는 결심했다.

“우리가 다시 돌아갈 때는…

정유를 지키러 가는 게 아니야.”


모두 유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세상을 살리러 가는 거야.

정유는 나무의 것이고,

우리는 그 나무가 선택한 사람들이니까.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

그래서 더 잘 지켜야 해.”


빛이 천천히 뿌리 사이를 타고 흘렀다.

마치 나무가 고개를 끄덕이는 듯 움직였다.


선생님이 빙긋 웃었다.

“유리씨, 사명… 맞네요.

나무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유리는 빛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 길이 우리를 선택한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모두 뿌리 길을 따라

지상으로 향했다.




4. 정유를 노리는 자들

터널의 철문이 다시 흔들렸다.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인간들의 다급한 속삭임.


“안에 누가 있는 거야.”

“지도에 표시된 그 터널 맞아. 정유가 있다던 곳.”


유리는 뿌리 길에서 올라온 흙을 털며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문 한 겹 사이엔

백합나무를 손에 넣으려는 인간들의 욕망이 있었다.


선생님이 총 대신 긴 쇠파이프를 움켜쥐었다.

“유리씨. 저 사람들… 우리가 올라온 줄 몰라요.”


유리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나무는 우리에게 시간을 준 거 같아요.

우리가 선택하도록.”


하린이 귀를 문에 대고 속삭였다.

“두 명 아니야… 네 명. 아니 다섯 명.”


문 너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거기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나야, 지훈!”


유경과 유진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 하나가 공기 속에 무겁게 남았다.


철문 틈으로 비친 얼굴,

거칠어진 눈빛,

그리고 손에 들린 금속 막대.

유리를 보자마자 지훈은 소리쳤다.


“정유를 줄 수 없다면…

최소한 확보는 해야겠지.”


그의 뒤에는

얼굴을 반쯤 마스크로 가린 남자들이 서 있었다.

군부대가 아니라,

군에서 도망친 사람들 같았다.


무전기에 남은 군 표식,

찢어진 전투복,

그리고 눈빛.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물었다.

“정유… 어디서 들었지?”


지훈은 웃었다.

“너희가 숨기는 걸 사람들이 모를 거라 생각했어?

정유 냄새가… 터널 밖까지 퍼져.”


그 말과 동시에

문 바깥에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문 주변 바닥에 스며들어 있던 백합나무의 미세한 뿌리가

갑자기 파르르 떨리더니 남자의 손목을 스쳤다.


남자가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그의 쉰 목구멍에서

벌레 같은 소리가 섞여 나왔다.


“크…으…윽…”


하린이 속삭였다.

“감염이… 진행 중인 사람같아.”




5. 배신자와 벌레 인간 등장


그 남자의 피부는 점점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움찔거리며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비틀렸다.


선생님이 유리에게 외쳤다.

“정유를! 뿌려요!”


유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허리에 찬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뚜껑을 여는 순간

바람처럼 퍼져 나간

은은한 백합 향.


그 향이 남자에게 닿는 순간,

변형되던 남자의 몸이 멈췄다.


숨이 가라앉고, 눈동자가 잠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아… 따뜻해…”


그러나 너무 늦었다.


백합의 ‘숨결’은

작은 죄는 정화하지만,

이미 벌레가 몸 안에서 뇌를 장악한 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


남자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의 팔에서 검게 일그러진 흔적이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했다.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 피부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유리는 숨을 삼켰다.


“안 돼… 제발…

소중한 생명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어.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신님...”


그 순간, 유리는

벌레가 모여 있는 곳에 정유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은은한 백합 향이 퍼졌다.


벌레들은 한참을 꼬물꼬물 떨더니
서서히 힘을 잃고 조용히 사라졌다.


유진이 속삭였다.

“언니… 정유가… 벌레를 없애는 거야?”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유는… 사람을 살리고, 벌레는… 사라지게 하는구나.

이미 몸 속에 벌레가 들어가서 악화되면 살릴 수는 없나봐.”


지훈이 비명을 질렀다.

“뭐야… 지금 뭐 한 거야!”


유리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한 게 없어. 신님이 주신 백합나무 정유의 힘이야.”






8화 끝. 오늘도 구독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명터널의 웹툰연재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링크

[연재 브런치북] 황명 터널과 빛의 아이들 :웹툰화


황명 터널과 빛의 아이들 : 네이버 웹툰


글: 유리 / 그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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