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터널》7화

배신자, 뿌리의 기억

by 산여울 박유리



《황명 터널》7화 배신자, 뿌리의 기억




1. 황명부대의 문 앞에서


30분 정도 걸었을까.

군부대의 철문이 보였다.

문 앞에는 철조망이 치워져 있었고,

누군가 서둘러 들어간 듯했다.


선생님이 소리쳤다.

“안에 사람 있습니까? 우리는 생존자입니다!”


대답이 없었다.

철문 반대편, 초소 유리창에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거미줄처럼 늘어진 검은 자국.


유리의 눈동자가 옅게 떨렸다.

벌레의 흔적…


선생님이 긴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들어가 볼까요?”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요.

여긴… 누군가 싸운 흔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순간.

초소 스피커에서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지?”


선생님과 유리는 동시에 숨을 멈췄다.

유리는 큰 소리로 답했다.


“우리는 터널 안 생존자입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잠시 정적.

그러더니 다시 음성이 들렸다.

“백합의 향이… 너희에게도 있나?”


유리는 놀라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백합의 향을 아는 사람?

유리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가슴에 모았다.


“신님… 우리가 찾으려는 게 사람인지,

사람 속에 있는 벌레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옆에서 말했다.


“유리씨.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그것이 믿음의 시작일거요. 세상을 살리는 시작.”


유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백합의 향, 이제 터널을 넘는다.


황명부대의 생존자들은 이미 백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알려준 것일까?


유리는 순간적으로 “아니요. 없는데요.”했다.

그러자 스피커에서는 또 지직하더니,

“그럼 이곳에는 필요 없어요.” 하는 것이다.

그들 일행은 다시 터널로 돌아섰다.




2. 모두 함께 떠나다


터널에서의 마지막 밤은 길었다.

백합나무의 은은한 향이 공기 사이로 스며들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출발이라는 두 글자에 묶여 있었다.

마음이 담담했다.


이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모두 둘러 앉아서 고민을 했지만...


유리는 마지막 남은 정유병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는 나무를 지키러 가는 게 아니야.

사람을 살리러 가는 거야.”


새벽.

하늘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고,

바다는 잿빛이었다.


유리는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웠다.

그 수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


“다시 한꺼번에 이동해요.”

유리가 말했다.


선생님이 말했다.

“자원도, 정유도 나눠서 가져가요.

정유가 든 병은 유리씨와 내가 관리할게요.”


그러자 누군가 중얼거렸다.

“왜 당신들이 정유를 관리하죠?”


순간, 공기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유리는 차분하게 답했다.


“정유는 권력이 아니에요.

책임입니다.

잘못 쓰면… 사람을 망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은 몇몇에게 불편하게 들렸지만,

뭐라고 반문은 하지 못했다.




3. 백합의 향에 취한 사람들


터널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조용히 유리에게 다가왔다.


“정유… 조금만 나눠 주면 안 됩니까?

아내가 기침을 해요.”


유리는 병을 꺼냈다.

조그만 면봉에 한 방울 묻혀 손에 올렸다.

“너무 많이 쓰면 몸이 버티지 못해요.”


그 남자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향을 가진 사람이… 선택권을 갖는 거군요.”


유리는 그 시선의 의미를 읽었다.

탐욕.

그리고 선생님도 그걸 눈치챘다.


출발한 지 이틀째.

식량이 줄어들고, 피로가 쌓이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질 때쯤이었다.


정유를 보관하던 가방이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열려 있었다.


선생님이 급하게 유리를 불렀다.

“정유병이… 하나 없어졌어요.”

유리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혹시… 누가 잘못 가져간 사람 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눈이 한 사람을 향했다.

처음부터 정유를 탐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왜 나를 봅니까?”

그 남자가 소리쳤다.


“당신들이 정유를 쥐고 있으니까

우리를 선택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유를 나눠 가진 사람만 살아남는 거 아냐?”

“그럼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살아남으려고 하는 거지?”


유리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4. 배신자


그날 밤.

누군가가 몰래 캠프 밖으로 빠져나갔다.


손에는 정유병 하나.

그가 남긴 흔적은 흙바닥에 찍힌 발자국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때 알았다.

“정유는 사람을 살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선생님이 이를 악물었다.

“그 사람, 그 병으로 누굴 설득하려 할 거야.

향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니까.”


유리는 고개를 숙였다.

“정유를 가진 게 힘이 아닐 텐데…”


선생님이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유리씨. 향은 아무 힘도 없어요.

사람의 마음이 힘을 만들어요.”


정유가 하나 사라졌다는 사실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말했다.

“정유가 없으면 죽는 거 아냐?”


유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정유는 길을 보여줄 뿐이예요.

우리가 진짜로 의지해야 하는 건—”


그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로를 믿는 거예요.”


선생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유가 바닥나도

믿음이 바닥나서는 안 되었다.




5. 뿌리의 기억


사람들은 떠났다.

백합나무는 남았다.


그러나 터널은 비어 있지 않았다.

유리 일행이 다시 황명부대로 가서 정유를 나누어 주고

터널로 돌아왔을 때,

입구에는 낯선 사람들이 서 있었다.


철문은 걸쇠로 잠겨 있었고,

문 앞에는 누군가 손으로 적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백합의 향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유진이 속삭였다.

“언니… 이거 우리가 떠날 때 없던 거야.”


철문 앞에는

누군가 쌓아 올린 상자와 바리케이드.


선생님이 말했다.

“누군가 터널을 차지했다는 뜻이지.”


유리는 철문을 두드렸다.

“안에 있는 분들!

우리는 돌아온 생존자예요.

잠깐만 문 열어 주세요.”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되돌아올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이곳은 우리가 지킨다.”


“우리라고요?”


“우리는 향을 나눌 수 없다.

향은 선택받은 자에게 돌아가는 거니까.”


유리는 숨을 멈췄다.

정유를 훔쳐 달아난 그 남자—

그가 여길 점령한 걸까?


선생님이 낮게 말했다.

“유리씨.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유리는 알고 있었다.

백합나무는 누가 그 공간에 맞는 사람이지를 알고 있다.

누가 향을 탐했는지,

누가 생명을 소중히 하는지를.




6. 진실을 가려내는 향


철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유를 내놓으면 들여보내 주지.”


사람들 사이에 불안과 분노가 스쳤다.

“정유를? 우리가 직접 가져온 건데?

왜 우리가 내놔야 하는데!”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위험해진 거잖아!”


사람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질 때마다,

백합나무의 향은 약하게 흔들렸다.


유리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정유는 거래의 조건이 아니에요.

사람을 살리려고 있는 거예요.”


그러자 철문 안쪽에서 비웃음이 들렸다.

“세상은 그런 말로 굴러가지 않아.”


유리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백합나무를 신으로 만든 건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때였다.

유리 발밑의 흙이 부드럽게 갈라졌다.

누군가 땅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듯한 진동.


두둑—

두둑—

두둑—


모두 움찔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유리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백합나무가 우리를 느끼고 있어.


발밑의 흙 사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가는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뿌리는 마치

“여기로 와”

라고 말하듯, 천천히 땅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유진이 숨을 삼켰다.

“언니… 이거… 길이야.”


유리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그 뿌리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매끄러웠지만,

손끝으로 심장이 뛰는 것 같은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진심이 읽어졌다.





7화 끝. 오늘도 구독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명터널의 웹툰연재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링크

[연재 브런치북] 황명 터널과 빛의 아이들 :웹툰화



황명 터널과 빛의 아이들 : 네이버 웹툰


글: 유리 / 그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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