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터널》 5화 깨어난 선생님과 백합나무
1. 빛을 훔치는 자들
향기에 대한 소문은 빨리 퍼져나갔다.
터널 안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반대편에도 사람들이 있다더라.”
“그들은 신님을 직접 봤대.”
아이들은 웅성거렸고,
하린은 불안한 눈으로 유리를 바라봤다.
“언니, 혹시… 그들도 신님을 믿는 걸까요?”
유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믿음이란 그런게 아냐.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형상을 믿을 뿐이야.
하지만, 신님은 눈에 보이지 않아.
숨처럼 우리 곁에 계신 분이야.
그걸 알아차리느냐 아니냐의 차이지.”
그녀의 말은 고요했지만,
터널 공기 속엔 어딘가 낯선 떨림이 있었다.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터널 반대편에서 불빛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손전등,
그리고 흰색으로 반짝이는 천 조각들이 흔들렸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있었다.
어깨에는 ‘빛의 자손’이라 적힌 천이 묶여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키가 크고, 얼굴모습은 중년정도의 남자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묘하게 울렸다.
“신님께서 이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당신들 중 누군가가 빛을 훔쳤다.”
터널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린이 유리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유리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신님께서… 빛을 훔쳤다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신님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아.”
그 무리의 지도자는 웃었다.
“그래, 너는 신님과 말을 나누는 자라지?
그 향, 너에게서 난다.
그건 우리에게 필요한 신의 증거다.”
그의 시선은 유리의 손끝으로 향했다.
향이 스며든 그 손끝에서
여전히 희미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신님의 눈물이다.
우린 그걸 되찾으러 왔다.”
유리는 단호히 말했다.
“이건 향유의 빛이에요.
빛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예요.
당신들처럼 모여서 숭배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젓고 낮게 중얼거렸다.
“거부는 신님에 대한 모독이야.”
2. 신님의 숨결
그 순간, 터널 위에서 바람이 불었다.
벽 틈으로 정유가 흘러내리며 향이 번졌다.
아이들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듯 부드럽게 흘렀다.
유리는 그 속삭임을 들었다.
“유리야, 빛은 누구의 것도 아니야.”
“빛은 나누는 사랑이야.”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신님…”
그 말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 순간,
지도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목소리…!
그분이 너에게만 말씀하신다고?”
그의 뒤편에서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신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빛을 따라 정유가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바닥의 이곳 저곳에 부드럽게 빛났다.
그리고 그 빛이 유리의 발아래에서
잔물결처럼 번져나갔다.
그녀는 속삭였다.
“신님, 이 빛을 두려움이 아닌 평화로 남게 해주세요.”
빛은 파도처럼 퍼져
모든 사람의 발끝을 감쌌다.
그중 욕심이 가득한 자들의 옷자락은
천천히 타올랐다.
불이 아니었다 — 정화의 빛이었다.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살려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신님!”
그때, 유리는 손을 저었다.
“그러지 마세요. 신님은 분노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시는 거예요!”
빛이 잠잠해졌다.
불길처럼 타오르던 향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터널 안에는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남겨진 자들은 웅성거렸다.
그리고 이내 무리의 지도자는 무릎을 꿇었다.
“그분은… 진짜 신님이시군.”
유리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신님은 우리들 안에 계세요.
빛은 모두의 것이에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분이 네게만 말씀하신 이유를 알겠다.
너는 빛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
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단지,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 말에 터널 안의 사람들은 울었다.
하린이 유진과 유경의 손을 꼭 잡았다.
터널 위에서 다시 바람이 흘렀다.
이번엔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었다.
“빛은, 이제 그들에게 맡긴다.”
신님의 목소리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유리는 천천히 벽에 등을 기대었다.
터널의 공기가 여전히 어두웠지만,
향기 속에는 분명히 따뜻한 숨결이 있었다.
‘신님은 하늘 멀리 계신 게 아니야.’
‘언제나, 나와 함께 계셨던 분이야.’
그 생각이 스치자 눈물이 흘렀다.
그분은 나를 떠나신 적이 없었다.
내가 어둠에 있을 때조차,
내 안에서 빛을 내시는 분이었다.
“신님…
당신은 나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내 안에서 웃으시는 분이시죠?”
그때, 향기 속에서 미세한 바람이 일었다.
마치 누군가의 대답처럼.
—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단다.”
그들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
빛을 소유하려는 자들과,
빛을 믿고 따르는 자들.
과연 신님은 누구의 마음을 비추실까.
3. 깨어난 선생님
전날 그렇게 요란한 사건이 일어난 후
모두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다. 누구도 뭐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터널 중앙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지?”
계단 위에서 한 남자가 몸을 기대며 내려오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옷은 덩굴에 의해 구겨지고 지저분했다.
“선생님…?”
유리가 달려가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여기가… 현실인가요?”
“당연하죠. 저기 선생님의 제자들이 있어요.”
선생님은 자신의 팔과 다리를 천천히 더듬었다.
덩굴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희미하게 금빛 가루가 남아 있었다.
“꿈인 줄 알았습니다.
나무가… 저를 묶었을 때… 잠이 들어버렸거든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꿈속에서… 저는 계속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욕심을 부렸든 것,
제 자존심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처 준 것들…
미안하다고… 계속 말하면서…”
그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제 됐다’ 라고.”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무는… 사람의 마음을 보나봐요.
누군가를 벌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그 마음이 신님께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유리를 바라보았다.
“절… 살려준 게 당신인가요?”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나무가 선택한 것 같아요.”
터널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한번 반짝였다.
마치 응답처럼.
유리와 선생님은 그 빛을 바라보았다.
“…빛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자라는군요.”
4. 며칠이 흐르고
터널 안의 사람들은 낮과 밤의 구분을 잃었다.
정유의 향이 서서히 옅어지고,
공기는 눅눅해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밖을 그리워했고,
어른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이게 며칠째인지” 묻는 일을 반복했다.
그날,
누군가 밖에서 낡은 라디오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깨진 안테나 끝에는 철사 조각이 감겨 있었고,
버튼을 돌리자,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부산 지역 전면 통제 중…
인근 도시 일부 감염 확산…
군이 차단선을 설치 중…”
목소리는 곧 끊겼다.
잡음이 벽에 부딪혀 터널 속을 메웠다.
“다른 곳도 오염됐대.”
누군가 낮게 말했다. 공기가 식었다.
아이들은 무릎을 끌어안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때, 한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고향은 괜찮을 거야.”
그 말에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
“거긴 산이 많고, 사람도 드물잖아.
바람이 맑으니까… 그쪽까진 안 갔을 거야.”
아이들이 그 말을 듣고 서로를 꼭 안았다.
“그래, 시골은 괜찮을 거야.”
“우리 부모님도 그쪽이시잖아요.”
유리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님, 제 고향만은 지켜주소서.
그 들녘과 나무들, 아직도 거기서 바람이 불고 있기를…’
그녀는 눈을 감았다.
고향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 순간, 잠시나마 터널의 어둠이 잦아드는 듯했다.
5. 백합나무
그날 밤, 유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벽 너머에서 들리는 미세한 진동 때문이었다.
“또 시작이야…”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손전등을 들었다.
진동은 터널의 중심부, 계단이 있는 방향에서 들려왔다.
선생님이 묶여있던 곳.
문틈으로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따뜻하고 맑은 냄새였다.
유리는 문을 조심조심 열고 천천히 들어갔다.
안쪽에는 작은 소극장만 한 공간이 있었다.
천장 한가운데, 큰 구멍이 있어 밤하늘이 보였다.
달빛과 별빛,
그 빛 아래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무가 서 있었다.
유리는 그 나무에 이름을 붙였다.
“하얀색의 꽃, 백합나무라고 부르자.”
나무는 살아 있었다.
마치 숨 쉬듯, 줄기에서 부드러운 미광이 흘렀다.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신님, 이곳이 계신가요.”
나무의 뿌리는 벽과 벽 사이의 틈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틈은 터널 밖으로,
마치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통로 같았다.
그녀는 그 길을 “백합의 뿌리길”이라 이름 붙였다.
그 길은 살아 있는 신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날 백합의 잎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슥슥—’ 작은 벌레들이 땅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유리는 숨을 죽였다.
그들은 어둠의 잔재였다.
이곳에서는 사라졌다고 믿었던 그 검은 벌레들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백합나무는 그들을 가두려는 듯 더 강한 빛을 내뿜었다.
빛이 닿자 벌레들은 타올랐다.
재로 변하며 사라졌다.
하지만 유리는 알았다. 이건 끝이 아니라고.
어둠은 언제나 남겨진 곳에서 다시 자라난다는 걸.
그녀는 터널 밖에서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을 느꼈다.
그 바람엔 희망이 섞여 있었다.
‘부산만 그런 게 아니야.’ 밖에서 들어온 이들이 말했었다.
‘다른 도시들도 이미 감염됐어.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그녀는 두 손을 모았다.
“신님,
이제 이 나무가 세상을 구원하게 하소서.
이 백합의 향이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게 하소서.”
그 기도 위로 빛의 입자가 천천히 흩날렸다.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제, 다시 여명이 온다.
그러나 빛이 스며드는 곳마다,
그림자는 더욱 진하게 깔린다.
— 5화 끝.
6화를 끝으로 웹툰을 끝냅니다.
사실 조금 더 오래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건강 문제도 있고,
AI 그림 프로그램 역시 아직 제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해
그동안 작업이 매번 쉽지 않았습니다.
"웹툰은 이런 것이구나!"하는 몇 주의 체험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6화를 마지막으로 웹툰 연재를 멈추려 합니다.
부족한 작품이었지만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웹툰 바로가기 링크는 6화 까지만 댓글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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