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터널》 4화 만남, 그리고 향의 심판
1. 빛 속의 만남
그때, 터널 속에서 또 다른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향이 퍼졌다.
정유의 향은 금빛 먼지처럼 공기 중을 떠돌았다.
그 향 안에는 기억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안고 잠들던 밤의 냄새,
빗소리, 그리고 꿈속의 기도.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우리 여기에 있어!”
이번엔 확실히 들렸다.
바람이 아닌, 살아 있는 목소리였다.
생명의 울림, 숨의 온도.
유리는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세게 뛰었다.
“……유진? 유경? 정말 맞아? 맞는거야?
오~ 신님~~~"
터널 반대편에서
작은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빛은 꺼질 듯 흔들리다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졌다.
유리는 울음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유진아! 유경아!”
두 동생은 먼지투성이 얼굴로 달려왔다.
그들의 숨결은 따뜻했고,
눈빛은 살아 있었다.
냄새도, 체온도, 심장박동도 —
모두 진짜였다.
재회의 순간
세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작은 어깨들이 겹쳐지고,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아이들은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 우리들은 편의점에 들렀다가 학교로 갔는데,
가다가 재난문자를 보았어.
놀라서 다시 집에 돌아 갔는데 언니가 없었어.
그래서 무서워서 숨어있다가,
학교도 가보고, 그리고 이 터널로 왔어.”
유리는 떨리는 손으로 그들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잘했어… 잘했어,
내 동생들.
정말 고생많았어!!
흑흑...
언니가 빨리 찾지 못해서 미안해!...
신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흑..."
그녀의 등 뒤에서 하린과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그 장면을 지켜봤다.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가렸고,
누군가는 훌쩍훌쩍 울었다.
터널 안의 공기가 잠시 따뜻해졌다.
빛이 흘러들어오며 세 사람을 감쌌다.
그 순간, 천장 틈에서 바람이 불었다.
정유의 향이 세 사람을 감싸 안았다.
그 향은 부드럽게 빛났고,
마치 그들을 축복하듯 흐르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신님,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유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은 기도가 아니라,
두려움 속의 깨달음이었다.
빛은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러나 향은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은 손을 잡고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이들이 가져온 물과 과자를 나누어주자,
학생들이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의 조각 같았다.
하지만 유리는,
터널 깊은 어둠 저편에서
무언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향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어.”
손끝이 미세하게 빛났다.
그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스치는 불안.
저 어둠 속의 그림자—
과연 무엇인가.
2. 균열의 시작
세 자매의 재회로 터널에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유진과 유경은 다른 학생들과 금세 친해졌다.
하린도 덩달아 동생들을 챙겼다.
하린은 3학년이고,
유진과 유경은 2학년이어서 더 좋은걸지도.
유리는 동생들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 언니가 곁에 있어.
신님, 감사합니다...”
그 말은 매번 기도로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의 숨이 들려오면,
그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향의 정유는 여전히 천장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향은 빛의 물결처럼 바닥을 타고 흐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그 향 덕분인지, 터널 속은
벌레 하나 없이 평화로웠다.
아이들은 이곳을 ‘빛의 통로’라고 불렀다.
“신님이 여길 지켜 주시는 거야.”
하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평화가, 오래가리라 믿고 싶었다.
누군가의 믿음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느껴지던 날이었다.
그날 터널 끝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낙엽을 밟는 듯한 사각 소리.
숨죽인 어둠이 깨졌다.
낯선 그림자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유리는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레 걸었다.
그 흐릿한 터널의 빛 속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옷은 더러웠고,
눈동자는 말라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조차 고통처럼 보였다.
“당신… 누구예요?”
유리의 물음에 남자는 낮게 웃었다.
그 웃음엔 사람의 온기가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군.”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여기서 향 냄새가 나서 왔어.
그거… 너희가 가지고 있지?”
하린이 유리 뒤에서 몸을 웅크렸다.
“향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남자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 빛나는 물.
그걸 조금만 나눠 줘.
밖에는 괴물들이 득실거려.
그 향이 있으면, 나도 살 수 있을 거야.”
그의 말 끝에는 절망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인간의 영역 밖에 있었다.
유리는 조심스레 말했다.
“이 향은 모두가 함께 써야 해요.
혼자 가지면 위험해요.”
“함께?”
남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곤 꽤 편해 보이네.”
그는 주머니에서 녹슨 칼을 꺼냈다.
쇳소리가 공기를 베며 울렸다.
“내가 얼마나 굶었는지 알아?
밖에 나가면 다 죽어.
이 향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그걸 나눠 써야 한다고?”
아이들이 비명을 삼켰다.
유진과 유경이 유리 뒤로 숨었다.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유리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건 신님의 숨결이에요.
욕심으로 손대면 당신은 다쳐요.”
남자는 비웃었다.
“신님~?
이 세상에 신 따윈 없어.
살아남는 자가 신이지.”
그의 눈동자 속에 불길 같은 욕망이 번졌다.
터널의 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3. 향의 심판
남자가 유리에게 다가오자,
터널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던 정유가
갑자기 빛을 냈다.
그 향의 정유가 남자의 얼굴에 닿는 순간—
그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손에 쥔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쇳소리가 길게 울리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피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유리가 모두를 보며 외쳤다.
“물러서요!”
남자는 벽에 부딪치며 쓰러졌다.
그 순간, 정유의 향이 더욱 밝게 타올랐다.
마치 신의 손길이 내려오는 듯,
그를 감싸며 태워버렸다.
잠시 후, 그의 몸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바닥에는 향기로운 빛의 향유만 남았다.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공포와 경외가 한꺼번에 스며들었다.
“언니… 방금 그건…”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저사람 몸 속에 벌레가 있었을 수도...
이 향은 벌레를 태워 버리나봐.
그 욕심의 정체가 벌레일 수도.”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그 순간, 터널은 다시 고요해졌다.
4. 예감
모두가 잠든 뒤,
유리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정유의 향기가 다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빛은 작은 기도처럼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신님,
이 빛은 생명을 살리는 숨결입니까?
아니면 욕망을 태우는 불입니까?”
벽에 닿은 손끝이 따뜻했다.
마치 답을 주듯, 향이 한 줄기 더 강하게 흘렀다.
‘그것은 너희의 선택에 따라 나누어진다.
신은 너희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다.’
유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희미한 빛이 비쳤다.
“신의 뜻은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하린이 급히 달려왔다.
“언니! 터널 반대편에서도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사람들이?”
“응, 그런데… 향 냄새를 맡고 따라오는 것 같아요.”
유리는 고개를 들었다.
“신님…”
유리는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도… 이 빛 안에 계신가요? 도와주세요”
그녀의 손끝에서 따뜻함이 전해져왔다.
터널 천장 틈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흘렀다.
그것은 마치 신님의 영,
아니, 신님께서 숨을 내쉬는 듯한 바람이었다.
유리는 눈을 감았다.
‘이제 곧, 또 하나의 시험이 올 것 같아…’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4화 끝.
눈은 아직도 조금 불편하지만, 무리되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황명터널의 웹툰연재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링크는 댓글에 남겨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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