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터널》 3화 어둠의 그림자
1. 터널의 아침
터널 안은 아직 어두웠다.
벽면의 습기가 밤새 얼룩을 남겼고,
공기 속에는 눅눅한 냄새와 꽃향기가 섞여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둘 눈을 떴다.
담요를 걷어내며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쳤다.
유리와 아이들은 바닥의 정유를 손끝으로 떠서
팔과 목에 조심스레 발랐다.
향은 여전히 강했지만, 어제보다 부드럽게 느껴졌다.
마치 그 향이 스스로를 정화시키며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얘들아, 다들 준비됐지?”
하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긴 한데, 언니 믿어요.”
유리는 아이들의 어깨를 하나씩 잡아주며 말했다.
“이 향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하지만 절대 욕심내지 말고,
필요한 것만 챙기고 바로 돌아오자.”
그녀의 눈빛은 단단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두 사람의 이름이 반짝였다.
‘유진아, 유경아…
언니가 지금 나간다.’
터널 입구로 다가가자,
바깥 공기가 싸늘하게 스며들었다.
새벽의 첫 빛이 도시의 잔해를 비추고 있었다.
건물들은 반쯤 무너졌고,
도로엔 검은 잔재가 바람에 흩날렸다.
어제의 세상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리고, 벌레들이 있었다.
그들은 벽과 차량 밑을 기어 다니며
썩은 냄새를 흘리고 있었다.
유리는 숨을 죽였다.
정유의 향을 더 문질렀다.
벌레들이 가까이 다가왔다가,
마치 무언가에 밀린 듯 방향을 틀었다.
아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야… 언니, 이거 진짜 효과 있어요!”
유리는 조용히 말했다.
“소리 내지 마.
빛이 있을 때만 움직여야 해.”
2. 동생들의 길 그리고 빛의 냄새
그 시각,
터널 반대편의 좁은 골목.
유진과 유경은 쓰러진 사람들 사이를 피해 걸었다.
“언니는 분명 터널에 있을 거야.”
“우리도 거기로 가보자.”
두 사람의 손은 단단히 맞잡혀 있었다.
재난문자 이후로 식당도, 가게들도 대부분 문이 닫히거나 부서져 있었고,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가끔 들려오는 벌레들 기어다니는 소리.
밤에 들려오는 괴음소리와 금속 긁히는 소리가
아이들의 심장을 쥐어짰다.
그들은 한 건물 옥상에서 숨죽이며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의 희망뿐이었다.
“언니를 찾아야 해.
언니는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아.
언니도 우리를 찾고 있을거야.”
유경이 멈춰 섰다.
“언니 냄새 나.”
“무슨 소리야?”
“정말이야. 이 냄새 기억나?
언니가 가방에서 스케치북 꺼낼 때 나는 향…
비누 같으면서, 약간 꽃향기 나는 거.”
유진은 코끝을 스쳤다.
바람 한 줄기가 골목을 지나갔다.
정말로 그 냄새가 났다.
그들은 그 향을 따라 걸었다.
길 끝에는 낮은 비탈길이 있었고,
그 위에 ‘황명고등학교’라는 표지판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
어두운 터널 입구가 보였다.
유리는 아이들과 함께 편의점을 찾았다.
대부분 닫혀있거나, 물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겨우 한곳의 편의점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선반은 부서졌고, 냉장고는 멈춰 있었다.
그녀는 작은 물병 두 개와 건빵 한 봉지를 챙겼다.
“이 정도면 충분해.
더 가지면 위험해.”
그녀가 돌아서려던 순간—
멀리서 바람이 한 줄기 불었다.
그 바람 속에 익숙한 향기가 섞여 있었다.
따뜻하고, 조금은 낯설지만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는 향.
“유진이…? 유경이…?”
그녀는 숨을 멈췄다.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언니, 왜 그래요?”
“아니야… 그냥, 무슨 냄새가 나서.”
유리는 터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은 터널 입구를 향해 불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곳으로 그녀를 부르는 듯했다.
그들은 밖에 나온 길에 가까운 동네를 조심스럽게 한바퀴 둘러봤다.
사람의 그림자는 없고,
곳곳에 기어다니는 벌레들 모습,
너무도 조용한 동네의 모습은 유령도시 같았다.
모두 어두워지기 전에 터널로 돌아왔다.
서서히 또 밤이 찾아왔다.
유리는 눈을 감고 조용히 속삭였다.
“신이시여,
만약 이 향이 길이라면,
제 동생들이 그 길 위에서 살아 숨 쉬게 해주세요.”
그리고 아주 멀리서,
터널의 다른 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 어둠의 그림자
“언니—!”
그 소리가 터널의 공기를 찢었다.
메아리는 벽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 순간, 모든 소음이 멎었다.
유리는 순간 몸이 굳었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바람이 정유의 향을 실어 왔다.
그 냄새는 너무 익숙했다 —
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두 아이의 머리 냄새,
방 안의 햇살, 웃음, 그리고 오래된 담요 냄새였다.
“유진이? …유경이?”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는 확신과 두려움이 동시에 얽혀 있었다.
유리는 손전등을 움켜쥐고
터널 입구 쪽으로 뛰었다.
발밑의 물이 튀었고,
벽에 닿은 불빛이 흔들리며 일렁였다.
뒤에서 하린이 외쳤다.
“언니! 위험해요!”
“괜찮아! … 내 동생들이야!”
입구 가까이에서 유리는 멈춰 섰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터널 밖은 아직 어두웠다.
그때, 그림자 두 개가 보였다.
작고 가느다란 실루엣 —
어둠 속에서 마치 안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림자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언니…”
“유진아… 유경아…”
세 사람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얽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의 손이 닿았다.
유리는 그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따뜻했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살아 있었구나… 정말…”
그녀의 몸은 무너지는 듯 떨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 떨림 속에
살아 있다는 확신이 새겨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막연한 느낌이 이상했다.
두 아이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빛 속에서 그들의 윤곽이 물결처럼 깜박였다.
유리는 숨을 고르며 다가섰다.
“유진아, 네 팔에 있던 그 반지… 보여줄래?”
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반지?”
“응, 엄마가 물려준 거 있잖아.”
그 아이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투명하게 흔들렸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유리는 숨을 삼켰다.
손전등 불빛이 일렁이며
두 아이의 형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공기 중에 녹아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허공을 스쳤다.
촉감이 사라졌다.
손끝엔 차가운 습기만이 남았다.
“아니야~~~
흑흑....
너희는 분명…
신님~~~~”
유리의 울먹임은 어둠 속의 바람을 타고 번졌다.
—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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