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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 터널》6화

빛의 문, 그리고 첫걸음

by 박유리





《황명 터널》

6화 빛의 문, 그리고 첫걸음




1. 다시 찾아온 진동


터널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하루 전까지 울음과 절망이 가득했던 그곳엔

지금 희미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유리는 벽에 기대앉은 채 잠들지 못했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희미한 신님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둠의 끝에는 길이 있다.”


그 말이 환청인지,

마음의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속삭임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사실이었다.


터널 안쪽에서는 아이들이 낮은 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울다 잠이 들었고,

누군가는 아직도 깨어 밖의 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정유의 향기가 은은히 퍼져 있었다.

그 향은 배고픔을 잊게 했고,

공포를 누그러뜨렸다.


새벽녘, 유리는 등 뒤의 벽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금세 하린이 놀라서 속삭였다.


“언니… 벽이, 움직여요.”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터널 벽 틈새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안쪽에서 누군가가 ‘안녕’이라며 속삭이는 듯한 빛이었다.




1.png 웹툰 컷





유리는 천천히 다가갔다.

손끝이 벽에 닿자,

차갑던 콘크리트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손바닥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빛이 살결처럼 살아 있었다.


“하린아, 아이들이랑 뒤로 물러서 있어.”


유리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그녀가 한 걸음 더 다가갔을 때,

그 빛이 마치 숨을 들이쉬듯 조용히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들려왔다.


“유리야, 문이 열린다.”


그 목소리는 바람의 결에 실려왔다.

말로 들은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터널 속의 백합나무.png 웹툰 컷과 병합






2. 빛의 문


빛이 퍼져나갔다.

어둠이 사라지고, 향기가 깊어졌다.

벽이 열리며 그 안쪽에서

맑은 공기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놀라 눈을 비볐다.

“언니… 저기 바람이 나와요.”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신님의 숨결이야.”


그녀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 가까이 섰다.

그곳엔 넓은 광장 같은 공간이 있었다.

햇살이 위에서 쏟아지고,

바닥에는 초록빛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은 따뜻했고,

어디선가 새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3일 오후 08_52_52.png 웹툰 컷




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진짜 하늘이에요?”


유리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얼마나 그리웠던 빛이던가.

하늘이, 바람이,

이토록 눈부시게 다가올 줄이야.


빛 속에는 작은 생명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터널 바닥의 균열에서 자라나는 잔디,

하얗게 피어난 작은 꽃송이들.


유리는 그 앞에 앉아 조용히 속삭였다.

“신님, 이건 회복의 징표인가요?”


“빛은 죽어가는 것을 다시 살린다.”

“...그것이 나의 뜻이다.”


그 음성은 하늘에서가 아니라,

유리의 심장 속에서 울렸다.


그녀의 손끝이 닿자,

작은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 향은 정유의 향보다 훨씬 맑고 깊었다.

그건 마치 ‘영혼의 향기’ 같았다.


하린과 다른 학생들은 그 빛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듯 서 있었다.

그들은 이제 공포의 피난민이 아니라,

새 세상의 첫 사람들처럼 보였다.


유리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의 공포가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3일 오후 09_00_41.png 웹툰 컷.



3. 새로운 시작


“신님,

제가 이 길을 걸으며 배운 건

죽음보다 두려운 건 ‘믿지 못하는 마음’이었다는 거예요.”


그 말에 바람이 살짝 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빛이 스쳤다.


“믿음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 음성이 흘러가자

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 신님. 이제 알겠어요.”


그녀는 가방 속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거기엔 그동안의 메모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상이 멈춘 날, 나는 신님의 숨결을 들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3일 오후 09_11_59.png 웹툰 컷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그녀는 스케치북에 조용히 글을 남겼다.

“그 숨결은 나를 두려움에서 건져내셨다.

그리고 사랑으로 다시 살게 하셨다.”




백합나무.png 브런치북 용 삽화. 백합나무




빛은 천천히 잦아들었다.

하지만 터널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유리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걸을 차례야.”


그녀는 터널 입구로 향했다.

그 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 순간, 유리는 마음속에서 또렷이 들었다.


“유리야,

너는 이제 세상에 증언하라.

네가 본 빛을 잊지 말고,

세상에 전하여라.

정유를 가져가서 세상을 살려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터널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여전히 부드러운 빛이 흐르고 있었다.


유리는 터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새벽의 공기가 차가웠지만,

그 안엔 맑은 생명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이들이 뒤따라 나왔다.

모두가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햇살이… 이렇게 따뜻했었나 봐요.”

하린이 울먹이며 말했다.


유리는 미소 지었다.

“우리가 너무 오래 어둠 속에 있었던 거야.

빛은 원래 이렇게 따뜻했어.”


바람이 불었다.

터널 입구 쪽에서 은은한 향이 흘러나왔다.

그건 정유의 향이 아니라,

이제 세상으로 흘러나오는 생명의 숨결이었다.




유리가 정유받는 모습5.png 브런치북 용 삽화. 정유를 받는 유리의 모습




터널 안에는 아직 나오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두려움에 갇혀 문 근처를 맴도는 아이들,

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

그리고 아직 신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유리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이 문은 우리만의 문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길이에요.”


그러자 빛이 한층 부드럽게 번졌다.

바닥의 균열에서 잔디가 자라나고,

돌벽의 틈에서도 새싹이 돋았다.


누군가의 두려움이 한 겹씩 벗겨지는 듯했다.

그때, 유리는 깨달았다.


**신님의 빛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하지만 빛이 깊어질수록,

그림자도 함께 짙어진다.


과연 그들의 앞날은 평탄할 것인가.




4. 첫걸음


그렇게 며칠 후, 아이들과 유리는

터널 위 평지에 작은 쉼터를 만들었다.


나무판자와 천막을 엮어 만든 임시의 집.

그러나 그 안엔 웃음이 있었다.


유진과 유경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언니, 이제 우리 뭐 할까?”


유경의 질문에 유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지.

우리가 본 걸 세상에 알려야 해.”


그녀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내어 그림을 그리고

뒷면에는 이 상황을 자세하게 써 내려갔다.


“신님의 숨결은 멈추지 않는다.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회복은 계속된다.”




터널 근처에 천막을 치다..png 브런치북 용. 쌍둥이 동생과 선생님과 함께. 터널 위에서




하린이 물었다.

“그럼 신님은 지금도 여기에 계신 거예요?”


유리는 미소 지었다.

“그럼. 신님은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는 한,

언제나 곁에 계시지.”


저녁이 되자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아이들이 잠든 뒤,

유리는 홀로 터널 입구로 걸어갔다.


그곳엔 아직도 은은한 빛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의 끝자락,

지하로 이어지는 깊은 통로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냉기,

그리고 희미한 울음소리.


유리는 가만히 속삭였다.

“아직… 남아 있구나.”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 목소리가 들렸다.


— “유리야, 아직 끝이 아니다.”


신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속엔 경고처럼 서늘한 떨림이 있었다.




5. 작전 회의


황명터널 안에 머물던 공기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백합나무의 향은 여전히 은은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여기만 안전하다”는 생각이 머물지 않았다.


유리 일행은 낮에는 산 중턱의 천막에서 지내고

밤에는 터널 속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잡음과 함께 짧은 말이 흘러나왔다.


“…기장 북쪽… 황… 부대… 생존자…”


모두가 얼어붙었다.

유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정유를 전하러 나가야 해.”


선생님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유리씨, 밖은 아직 위험해요. 벌레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백합나무는 우리 없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요.”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유리만 쳐다보았다.

유리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백합나무와 신님 덕분에 이렇게 살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누가 지켜요?

우리는 이제 우리가 가진 걸 나눠야 해요.

우리를 살린 향을… 세상에 보내야 해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첫 목적지는 어딘데요?”

유리는 지도 위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로 정해요.

황명부대. 제일 가깝고,

또 부대에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을까 싶어요.

터널에서 빨리 이동하면 도보 30분정도 거리.

해운대와 기장의 경계쯤 되는 곳이에요.


“가장 가까운 곳부터. 거기 누군가 살아 있다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게 되는 거죠.”


유리는 세 조로 나눴다.


“1조 – 유리, 선생님, .....

아! 안되겠어요. 우리는 흩어지면 안돼요.

같이 움직여요. 느려도 그게 안전해요.”


유진이는 울상을 짖고, 하린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우리, 돌아올 때 사람 한 명이라도 데리고 와요.”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유리씨 함께 해서 좋아요. 같이 움직여요. 안전하게”


유리는 피식 웃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지 압장서서 나서야 해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이상한 모임이라고 한다죠.

나무를 지키는 집단이라고 말이에요.


이제는 그 오해를 풀러가요.

우리가 백합나무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러 가요. 오해는 언젠가 풀리게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따뜻한 눈빛으로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씨는 신을 믿는 거지. 나무가 아니라.”


그 말이 유리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터널 입구로 나가는 순간,

바람이 한 줄기 스며들었다.

바람 속에는 바다 냄새, 녹슨 철 냄새,

그리고… 약한 부패 냄새.


유진이 중얼거린다.

“…부산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는 거야?”


하늘은 맑았다.

하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차도는 텅 비었고,

신호등은 더 이상 깜빡이지 않았다.

바람에 방치된 깃발 하나가 흔들렸다.


“부산 전면 통제”


쓰러진 표지판 너머,

먼 도로에 검게 바스러진 흔적들이 있었다.

형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거기서 삶이 사라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선생님이 작은말로 속삭였다.

“너무 조용해요.”


유리는 눈을 감았다.

백합 향을 기억해요.

두려움보다 더 희망이 강하도록요.


“가요. 목적지는 황명부대.”




6화 웹툰 4컷 중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6-5.jpg




6화 끝



이번 6화를 끝으로 웹툰을 끝냅니다.


사실 조금 더 오래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건강 문제도 있고,

AI 그림 프로그램 역시 아직 제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해

그동안 작업이 매번 쉽지 않았습니다.


"웹툰은 이런 것이구나!"하는 몇 주의 체험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웹툰 연재를 멈추려 합니다.


부족한 작품이었지만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웹툰 바로가기 링크는 6화 까지만 댓글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웹툰그림과 함께 올려보았습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서...ㅋ

글: 유리 / 그림: AI

터널 근처에 천막을 치다..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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