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에세이처럼

다시 웃은 날

by 산여울 박유리




오월 어느 날, 큰 아픔을 딛고 일어난 유리는,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바람도 부드럽게 귓볼을 간지럽힌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길 위에 봄이 내려앉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전의 꽃길 모습은 이미 지고 없다.


몇 해 전 참 좋았던 그 하루,

그날도 따스한 햇살이 내리던 봄날이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이른 계절이었지.





유리png 복사.png



유리는 공원 벤치에 조용히 앉아 스케치북을 펼치고 있었다.

짙은 파란 원피스를 입고 연필을 손에 든 채,

유리는 마음속에 있는 친구들을 조심스레 불러냈다.


“분홍이, 초록이, 노랑이…”


강아지 보솜이는 분홍 목줄을 하고 유리 옆에서 장난감을 물고 놀고 있었고,

벚꽃잎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흩날리고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한 편의 기도와 같았다.


조금 지나 노랑이가 벤치로 다가왔다.

말없이 앉으며, 따뜻한 미소로 물었다.


“유리야, 또 그림 그려?”

“응. 너희 생각이 나서.”


둘은 그렇게 나란히 앉아,

벚꽃을 바라보며 봄을 이야기했다.


초록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왔고,

반가운 인사에 파랑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밝게 손을 흔들었다.


“초록이~ 반가워!”


그 순간의 “짝!” 하는 하이파이브.

벚꽃잎 사이로 번지는 웃음.


그 모든 장면이 마치 오래된 기억의 사진처럼

유리의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언니~ 사진 한 장 찍어요!”


기타를 멘 분홍이가 벚꽃 아래서 손을 흔들었고,

친구들은 벌떡 일어나 분홍이에게로 달려갔다.


“하나, 둘, 셋~ 찰칵!”





그날의 웃음, 어깨를 맞대고 선 따뜻한 사진,

보솜이도 그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꼬리를 흔들며 함께 담겨 있었다.


그날의 벚꽃길엔 샌드위치, 따뜻한 차, 작은 화분,

기타의 노래가 있었다.


누구 하나 돋보이지 않았지만,

모두의 정성과 마음이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 있었다.


그 봄날,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조용히 나누었다.






“다시 온 봄날, 그날 유리는 웃었다.”


2년 후 아픔을 지나 마음이 자꾸 가라앉던 어느 날,

유리는 다시 그 길을 친구들과 걷고 있었다.


그날의 친구들, 그날의 사진, 그날의 다정한 말들이

조용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더 자주 만나자.”


누군가 해주었던 그 말이

오늘따라 유독 따뜻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햇살이 부경대 캠퍼스를 적셨던 봄날,

유리는 해물 리조또 한 그릇에,

꾹 눌러두었던 속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며

서로의 웃음을 나누었다.


연못가의 작은 거북이를 보며 "와~!"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을 때,





유리는 깨달았다. “이 웃음은, 정말 오랜만이야.”


그날,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유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시냇물이 흐르는 자그마한 다리 옆,

늘 가던 가든카페에서 마시던 차,

MBTI 이야기에 웃으며 이어지던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이 유리에게는 회복의 선물이었다.


이제 유리는 기도한다.

나를 다시 웃게 해준 친구들,

조용히 마음을 나눠준 그 친구들이

늘 평안하게, 환하게 피어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그 길 위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기를.


꽃은 잠시 피었다가 지지만,

그날의 웃음은 마음에 스며들어 오래 머물렀다.



글: 유리 / 그림: AI





이전 04화동화처럼, 에세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