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사이로 피어난 시간
햇살이 슬며시 들어온다.
정원의 시간은 언제나 조용히 흘러갔다
여름이라 꽃은 적지만, 초록빛 잎사귀가 하루의 온기를 불러오는 듯하다.
유리는 천천히 물뿌리개를 들었다.
그 손끝에서 물이 부드럽게 흐르며 화분을 적신다.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이곳, 식물 곁에서부터였다.
식물은 유리에게 말 없는 친구였다.
그저 바라보고, 만지고, 물을 주는 일상 속에서
유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작은 싹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히는 것을 볼 때마다,
유리는 알 수 없는 힘을 얻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기억이 문득 찾아왔다.
“지금 이 아이들은, 대부분 데려온 아이들이지…”
유리는 작은 꽃화분 하나를 들여다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용히, 오래전 자신이 살았던 그 집을 떠올렸다.
오래 전, 높은 산 아래 작은 주택에 살던 시절.
그곳에는 유자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들이 있었다.
삶은 고요했고, 그 고요 속에서 유리는 조금씩 회복되어 왔다.
15년 전, 유리는 남편과 함께 낯선 동네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에서 남편의 건강이 갑자기 무너지고,
유리 역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시기였다.
마당엔 유자나무와 감나무 두 그루가 덩그러니 있었고,
집은 고요했고, 어쩐지 쓸쓸했다.
처음엔 사막처럼 느껴졌던 그곳이었지만—
그다음 해부터 유리는 하나씩 작은 꽃나무와 화분들을 들여놓았다.
옥상엔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고,
봄이면 새싹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독였다.
여름이면 담장에 장미와 능소화가 흐드러졌고,
가을이면 청포도와 유자가 열렸다.
겨울이면 따뜻한 유자차를 끓여 마셨다.
그 집은 어느새 유리의 아름다운 정원집 쉼터가 되어 있었다.
5년 전 살던 주택에서,
나는 거의 남편과 함께 마당에 있었다.
저녁이면 모기가 들끓었고,
우리는 전자모기채를 들고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모기를 잡곤 했다.
그 소리가 참 묘했다.
울집에서 따닥따닥— 잠시 후 옆집에서도 따닥따닥—
모기 잡는 소리마저 이웃과 함께 나누는 듯했다.
우리 집은 언제나 열린 집이었다.
대문이 열려 있듯 마음도 열려 있었고,
마당에서 흘러나온 웃음과 소리들이
이웃의 삶에 스며들곤 했다.
남편이 아픔이 오래되면서, 그리고 이사를 하면서
지금은 그냥 조용히 산다.
아파트라는 구조 때문 일 수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도 닫아버린 듯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전히 친구들은 이 집을 편하게 드나든다.
아마도 그때의 “따닥따닥” 소리가
아직도 이 집과 내 마음에 따뜻하게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집은… 아픈 기억이 많았지만,
지금은 따뜻하게 기억되어 좋아.”
유리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정원은 꽃이 피는 공간이라기보다,
삶을 회복하고 싶은 작은 의지가 자라던 자리였다.
그 마음은 여전히 자신 안에 살아 있었다.
지금은 베란다의 작은 초록빛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유리는 그때처럼 하루를 가꾸고 있었다.
"지금도" 그 집에서 가져온 화분 몇 개는 곁에 남아 있었다.
이사할 때, 꽃들을 옮기기 위해 용달차를 하나 더 불러야 했을 만큼
애정을 쏟았던 아이들이다.
아파트 베란다 한켠에서 조용히,
그러나 여전히 그때의 향기를 머금고 살아 있었다.
"햇살이 그때보다 조금 작지만,
잘 자라줘서 고마워.
그 시절의 계절들, 지금도 내 마음에 조용히 피어 있구나.”
유리는 곁에있는 화초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오늘도 그렇게, 조용히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지금 내가 숨쉬는 공간 아파트 베란다.
크기는 작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아내는 소중한 쉼터.
글(사진): 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