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 기념 습작(2)
나는 거울을 본다. 다만, 나를 보지 않는다.
매일 아침 화장실 거울 앞에 선다. 한 남자가 서 있다.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다. 그것들이 '얼굴'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 얼굴이 나라는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남자를 타인처럼 관찰한다. 위생 점검. 기계적으로. 면도는 잘 되었는가. 눈곱이 끼어 있지는 않은가. 코털이 삐져나오지는 않았는가. 넥타이는 비뚤어지지 않았는가. 확인이 끝나면 거울에서 눈을 돌린다. 그 남자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마주칠 이유가 없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모르니까.
선천성 안면인식장애.
열일곱 살에 진단받았다. 의사는 설명했다. 뇌의 방추상회 영역이 일반인과 다르게 작동한다고. 얼굴을 '전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으로 인식한다고. 그래서 눈, 코, 입을 따로따로 보게 되고, 그것들이 조합되어 '이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어야 할 이유를 몰랐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므로,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등을 읽는 법을 배웠다.
처음 그것을 깨달은 것은 검찰청 복도에서였다. 임용 첫해, 나는 매일 선배들의 얼굴을 헷갈렸다. 김 검사와 박 검사를 구별하지 못했다. 둘 다 검은 양복을 입었고, 둘 다 짧은 머리였고, 둘 다 비슷한 체형이었다. 회의 시간에 이름을 잘못 불러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내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뒷모습을 보았다. 삼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등만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박 검사라는 것을 알았다. 왼쪽 어깨가 미세하게 처져 있었다. 걸음이 빨랐고, 팔을 거의 흔들지 않았다. 발이 바닥에 닿는 리듬이 독특했다. 쿵, 쿵, 쿵. 규칙적이지만 약간 무거운.
나는 멈춰 섰다. 뒤통수만 보고 사람을 알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등을 연구했다. 밤마다 CCTV 영상을 돌려보았다.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관찰했다. 어깨의 각도, 목의 기울기, 보폭의 길이, 팔의 진폭, 무릎의 움직임. 모든 사람의 걸음은 지문처럼 달랐다. 한 번 저장한 등은 잊히지 않았다. 나의 뇌는 얼굴을 저장하는 데 실패한 용량을, 등을 저장하는 데 쓰고 있었다.
십팔 년이 흘렀다. 나는 이제 수천 명의 등을 안다.
12월의 서울.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중앙지검 4층 복도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형광등이 켜졌지만 창밖은 검푸른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겨울 해는 짧다. 네 시만 넘으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복도 끝 창문으로 보이는 서초동 빌딩 숲에는 하나둘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네모난 창문들이 바둑판처럼 빛났다. 저 창문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그들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나에게 세상은 얼굴 없는 군중이다.
복도 바닥은 회색 리놀륨이었다. 내 구두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딱, 딱, 딱. 나는 내 걸음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소리로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내 걸음걸이가 어떤지 모른다.
형사부 회의실 문을 밀었다.
형광등 불빛이 쏟아졌다. 회의실은 좁았다. 긴 테이블 하나와 접이식 의자 열두 개. 벽면에는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프로젝터 스크린이 내려와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서류 뭉치와 커피잔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커피 냄새가 났다. 탄 커피. 자판기 커피. 오래 방치된.
"검사님 오셨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 젊은 남자. 아마 박 수사관일 것이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약간 빠른 말투가 그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상석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았다.
"피해자는 서초동 법무법인 '정의' 대표 김성호, 오십팔 세입니다."
목소리는 계속됐다. 나는 스크린을 보았다. 피해자의 사진이 떠 있었다. 남자의 얼굴. 눈, 코, 입. 조합되지 않는 부품들. 나에게 저 사진은 의미가 없다. 대신 옆에 뜬 프로필을 읽었다. 이름. 나이. 경력. 전과 기록.
전과 기록에서 손이 멈췄다.
2016년. 특경법 위반. 횡령. 불기소 처분.
내가 처리한 사건이다. 당시 중견 법무법인 자금 횡령 혐의. 증거 부족. 무혐의. 기억났다. 사건 내용은 기억났다.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나는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CCTV 영상 띄워줄래요."
내 목소리가 말했다.
스크린이 바뀌었다. 건물 후문. 화면 왼쪽 상단에 타임스탬프. 22:47:33. 화질은 좋지 않았다. 1080p라고 했지만, 야간이라 노이즈가 많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콘크리트 바닥이 희뿌옇게 빛났다. 후문 철제 문이 화면 중앙에 있었다.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나왔다. 카메라를 등진 채. 검은 패딩 점퍼. 청바지. 흰 운동화. 야구 모자. 남자는 문을 닫고 잠시 멈춰 섰다.
정지 화면에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젊은 남자의 등이었다. 어깨너비는 보통. 키는 175센티미터 내외. 체형은 마른 편. 수천 명 중 하나일 뿐인 등. 특별할 것 없는.
그러나 남자가 걷기 시작했다.
첫 발이 내디뎌지는 순간, 나는 알았다.
왼쪽 어깨가 미세하게 늦게 따라왔다. 오른발이 바닥을 밀 때, 오른쪽 어깨는 자연스럽게 뒤로 빠진다. 왼발이 나갈 때, 왼쪽 어깨도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이 남자의 왼쪽 어깨는 반 박자 늦었다. 찰나의 지연. 일반인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그러나 나는 보았다. 그 엇박자.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하다 어깨를 다쳤다. 탈구였다. 인대가 늘어났고,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의사는 말했다. 성장하면서 나아질 수도 있다고. 나아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왼쪽 어깨는 언제나 반 박자 늦게 움직였다. 움직임의 리듬이 미세하게 어긋났다. 정지해 있으면 모른다. 걷기 시작하면 안다.
걸음의 리듬도 알았다. 오른발이 먼저 나가고, 왼발이 따라붙는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높이가 낮다. 질질 끄는 것은 아니지만, 발을 높이 들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마트폰을 많이 봐서 목이 앞으로 빠졌다. 아내가 걱정했었다. 거북목이 된다고. 자세를 고치라고. 고쳐지지 않았다.
준서.
내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