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 기념 습작(3)
오후 네 시, 갯바위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면이 비늘처럼 일어섰다. 잉어 등짝 같은 것들이 수백 마리씩 한꺼번에 뒤집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바다 위에 은박지를 구겨 던져놓은 듯했다. 빛은 한 군데 머물지 못하고 자꾸 자리를 옮겼다. 방금 반짝이던 곳이 이미 꺼졌고,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날카로운 흰빛이 터졌다.
손을 뻗었다. 손끝이 물에 닿자마자 빛이 내 손등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물인데, 도망치는 것은 빛이었다. 건져 올린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짠물만 차갑게 흘렀다.
네 얼굴이 자꾸 물 위로 떠올랐다가 부서졌다. 파문이 지날 때마다 이마가, 눈이, 입술이 따로따로 흩어졌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풀어졌다. 기억이 그랬다. 어떤 날은 선명하게 윤곽이 잡히다가도, 다른 날은 물에 번진 잉크처럼 경계가 없어졌다.
햇볕이 기울었다. 바다가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윤슬도 색이 변했다. 낮의 은빛이 아니라, 다 익은 감 속처럼 붉고 말랑한 빛이었다. 빛이 스러지면 바다는 검은 천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출렁이기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파도가 밀려왔다. 갯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이 일었고, 물이 빠지는 자리를 따라 윤슬이 자지러지게 쏟아졌다. 부서지고 부서지고 또 부서졌다. 파도가 물러가자 수면이 다시 잔잔해졌다. 같은 물이 아니었다. 이미 빠져나간 물 위에 다른 물이 밀려왔을 뿐이었다.
해가 수평선에 걸렸다. 마지막 빛줄기가 수면을 비스듬히 훑고 지나갔다. 바다 전체가 잠깐, 피처럼 붉었다. 그리고 꺼졌다.
나는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어두운 바다를 보았다. 빛이 떠난 자리는 검었다. 차갑고, 무심하고, 끝없이 출렁였다. 발끝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