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읽고

by 동네과학쌤

최근 몇 년간 학교 현장에서 '역량중심 교육과정', '역량기반 평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끼던 막연한 위화감이 있었다.


분명 중요한 말인 것 같은데, 왜인지 그 말을 할 때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역량'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고, 나는 그 경계를 의식하지 못한 채 두 세계의 언어를 뒤섞어 쓰고 있었다.


같은 역량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학교 교육, 직업교육, 조직 성과의 세계는 서로 다른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


책에서 제시하는 구분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생애능력, 기본노동능력, 성과창출능력이라는 세 층위였다.

저자가 말하는 생애능력은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며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적응해 가는 능력의 묶음이다. 이는 교육과정에서 말하는 핵심역량, 시민성, 학습 역량과 맞닿아 있다.


반면 기본노동능력은 직업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행 능력이고, 성과창출능력은 조직이 원하는 결과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이 세 개는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작년 학기말, 어느 때나 있던 선생님들과의 협의회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A는 분명 역량은 있는데 결과가 안 나오네요." 그 순간에는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때로 돌아가 묻게 된다.


그때 내가 말한 '역량'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그 학생이 가진 생애능력을 본 것인가, 아니면 내가 기대하는 성과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본 것인가. 나는 교사로서 학생의 성장을 말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무의식 중에 경영의 언어로 학생을 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HRD라는 영역을 떠올리게 되었다. HRD는 형식상 경영의 하위 분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습, 성장, 평가, 훈련이라는 교육의 핵심 기능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역량모델링, 역량평가, 역량기반 교육훈련의 절차는 학교의 교육과정 설계 및 평가 설계와 구조적으로 매우 닮아 있다. 결국 기업이든 학교든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의 3, 4장에서 다루는 기본노동능력과 성과창출능력은 이 접점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기업에서 말하는 역량은 결국 "성과를 안정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의 특성"이다. 여기에는 태도, 사고방식, 문제 해결 패턴, 협업 방식까지 포함된다.


이것은 학교가 학생을 평가할 때 점수로는 포착하기 어려워하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중요하게 보고 싶어 하는 요소들과 매우 닮아 있다.


수행평가, 프로젝트 학습, 탐구 활동을 통해 학생의 역량을 본다는 말은, 구조적으로 보면 기업의 역량평가와 같은 논리 위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역량을 낭만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특히 역량평가와 역량모델의 활용 부분을 읽으며, 나는 불편한 깨달음을 얻었다.


역량은 사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선발하고, 배치하고, 걸러내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역량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남고, 어떤 사람은 탈락자로 분류될지가 결정된다. 교육이 평등을 지향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역량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위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점에서 저자가 말하는 성과창출능력은 교육 현장에도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학생에게 무엇을 '성과'로 요구하고 있는가. 시험 점수인가, 문제 해결 능력인가, 협업인가, 탐구의 깊이인가. 그리고 그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정말로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가진 학생만을 골라내고 있는가.

8장에서 저자가 다루는 AI 시대의 역량 논의는 이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AI가 많은 과업을 대신 수행하는 시대에, 역량은 더 이상 특정 기술이나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서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이동한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 말하는 고차 사고, 문제 해결력, 메타인지와 정확히 겹친다. 결국 교육과 경영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학교 현장에서 '역량', '코칭', '성과 관리', '질 관리' 같은 경영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 느껴진다.


지난 학기 자율 연수에서 '데이터 기반 학생 관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묘한 감정이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들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이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식스 시그마가 원래는 공정의 결함률을 줄이기 위한 산업 품질 관리 기법이었지만, 이제는 평가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관관리하는 기법으로 쓰이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학교 역시 이제는 성과를 관리하는 조직이 되었고, 학생의 학습 역시 하나의 '프로세스'로 다뤄지고 있다.

'역량,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하나의 요구를 던진다.


역량을 말할 것이라면, 그 역량이 어떤 맥락에서, 누구의 성과를 위해, 어떤 기준으로 정의되는지부터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역량을 요구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 교육의 언어였는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차용한 경영의 언어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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