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무렵, 문득 1년 단위로 목표를 세우는 습관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10년 단위의 거대한 계획이나 주 단위의 세세한 일정만 세웠는데, 이제는 1년이라는 적당한 호흡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올해도 소소한 목표 몇 가지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책을 쓰자'였다.
올해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분들과 작가를 겸업하시는 분들의 연수와 기획에 참여하며 어깨너머로 배우던 중, 운 좋게 내 글을 선보일 기회를 발견했다. 포레스트 웨일 출판사에서는 매월 특정 주제로 시나 에세이를 최대 3편까지 투고받아, 심사를 거쳐 선정된 작품들을 모아 공동 저서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 4월, 이 시스템을 처음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지만 가볍게 탈락했다. 심사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너무 안일하게 접근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5월, 6월 출간 예정인 『반짝이는 여름의 조각』이라는 책에 내 글이 실리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준비했다. 주제는 '반짝이는' 또는 '여름' 중 선택이었고, 나는 「10대의 반짝임」, 「20대의 여름」, 「30대의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짧은 글을 썼다. 브런치에 게시한 글도 투고가 가능하다 하여 브런치에도 올렸다.
처음엔 여름을 주제로 삼으려 했다. 여름 하면 녹음, 성장, 사계절 중 두 번째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반짝이는 여름'이라는 제목에서 착안해 반짝임도 같이 담고 싶었다. 윤슬, 볕뉘, 빛, 물비늘, 물결, 햇살 같은 소재들이 떠올랐다. 언어유희도 해보고 싶어서 여름, 열음, 어름, 얼음, 아름 같은 단어들도 고민해 보았지만, 정작 무엇을 써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고민만 길어졌다.
그러던 중 PAPS 시간에 운동하는 아이들을 보며 막연히 덥다는 생각과 함께 '저들은 청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도 백세 시대라면 봄이 지나고 여름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글감으로 괜찮을 것 같아 「30대의 여름」을 쓰게 되었다. 막상 쓰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읽으면서 손이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져 퇴고하는 것이 더 힘들었을 뿐이다.
첫 번째 글을 쓰고 나니 이번엔 반짝임을 써보고 싶었다. 자연에서의 은은하거나 청량하고 추억에 남는 아릿한 반짝임 말고 눈 아픈 화려한 반짝임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보석, 네온사인, 스팀펑크, 스테인글라스, 유리 등, 형광등 등이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름이 되어 해가 길어진 것을 느꼈고, 퇴근길에서도 다시 한번 긴 낮을 실감 했다. 야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새벽 1시였는데, 우리 동네에 불이 켜진 곳이라곤 편의점뿐인 것을 보며 「20대의 여름」을 쓰게 되었다. 이 글 역시 막상 쓰는 데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고, 퇴고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두 편의 글을 쓰고 나니 더 쓸 내용도, 쓰고 싶은 소재와 마음도 사라져서 2편만 투고하려 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제목을 고민하던 중 그냥 처음 생각대로 「20대의 여름」, 「30대의 여름」이라고 정하고 나니, 문득 「10대」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10대의 여름은 뭔가 체육시간 다음 수업 때 느끼는 땀내 나고 습한 느낌이라 「10대의 반짝임」을 쓰기로 했다.
반짝이던 10대라 하면 추억이고, 10대의 가장 큰 추억은 첫사랑이 아닐까 싶어 첫사랑에 대한 회상을 쓰려했다. 하지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주 옛날에 써놓은 습작 중 하나를 다듬어 수정하여 투고했다. 참고로 당시 습작에 달아둔 제목은 '빛의 직진, 반사, 굴절로 인한 10대의 왜곡된 감정 인식'이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은 소재가 우리 생활 속에 많이 존재하지만,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글감을 고민하며 살다 보니 놓치고 지나던 것들 하나하나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누군가가 공부란 세상을 보는 눈의 해상도를 올리는 일이라고 했던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세상을 보는 눈의 해상도를 올리는 일과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결과가 발표되었다. 감사하게도 투고한 세 편 모두가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꾸준히 읽고 쓰며, 더 나은 글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