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때로 스스로에게조차 사실로 둔갑하며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이전에 한 학생과 지필평가 후 성적 상담을 하던 날의 일이다. 그 학생은 평소보다 국어 성적이 낮게 나왔는데,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답안을 OMR에 밀려 썼다고 말했다. 학생의 눈물과 당황한 모습에 나 역시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정확한 상담을 위해서라도 학생의 실제 성취 수준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학생의 답안과 정답지를 하나하나 비교하며 검토한 결과, 곧 학생이 말한 '밀려 쓰기'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다음 날 이 사실을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학생은 나를 보며 여전히 당황한 눈빛으로 정말 밀려 썼다고 반복해 말했다. 학생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확신이 느껴졌고, 나는 그 순간 학생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거짓말은 고의적인 속임수가 아니었다. 학생은 자신이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밀려 썼다'라는 기억을 만들어낸 것이다. 거짓말은 이렇게 기억의 일부가 되어 현실을 덮고, 스스로조차 속이며 자기방어 기제로 작용한다.
기억의 왜곡과 거짓말은 개인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번은 동아리 발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 사이에 준비 자료가 없어지는 일이 있었다. 자료를 관리했던 학생은 분명히 자신이 자료를 다른 친구에게 넘겼다고 주장했지만, 그 친구는 자료를 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주변 학생들도 실제로 자료를 넘기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료를 넘겼다고 주장한 학생은 자신이 자료를 전달하던 상황을 생생히 묘사하며, 오히려 상대 학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억의 왜곡은 서로 간의 불신을 낳았고, 두 학생 사이에는 갈등이 생겼다. 이처럼 기억이 감정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거짓은, 실제 사건보다 더욱 뚜렷하고 사실적으로 각자의 마음에 새겨진다. 그렇게 왜곡된 기억이 서로에게 불신의 씨앗을 뿌리며 관계의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거짓말과 기억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억은 불완전하며, 우리의 감정과 욕구에 따라 변형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후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게 되었다. 학생과의 갈등이나 오해가 생겼을 때, 나와 당사자의 기억만을 믿지 않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거나 상황을 다시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기억의 왜곡을 인정하는 과정은 나 자신에게 더 큰 신뢰감을 주었다. 완벽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학생들과의 소통과 관계가 더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기억 역시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기억을 과신하는 대신, 자신이 가진 편견과 감정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돌아보는 노력이 중요하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속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기억을 더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