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쓰 Jan 28. 2020

플랜B를 택해야만 한다는 것

'옵션B' 리뷰


   셰릴 샌드버그, 애덤 그랜트 공저의 옵션비를 다 읽었다. 자꾸 아무 기록도 없이 책 제목만 남기고 넘어가니까 결국 나에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 같아, 생각 조각들이라도 남겨보기로 한다. 타도하자 완벽주의.


   셰릴 샌드버그가 서술하는 형식으로 쓰여 있어, 그녀의 남편이 죽은 일화로부터 책이 시작된다. 48세에 갑작스레 러닝머신 위에서 쓰러져 죽은 남편. 어린 아이 둘과 함께 남겨진 그녀는 전혀 계획에도 없던 싱글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는지, 그 고군분투기를 회복탄력성이라는 큰 주제를 중심으로 녹여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변호사시험에 불합하고 집어든 책이라 참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모두가 옵션A를 택할 순 없기 때문에 옵션B를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 회복탄력성의 중요성. 실패해야만 배울 수 있다는 말. 아마 예전 같으면 클리셰 중 클리셰로 다가왔을 그 말들이 무척 절절했다.

 

   사람들이 상실을 겪어내는 과정, 그 과정이 있은 후 오히려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대목에선 시덥잖게도 '그래, 나도 더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에서 실패하게 했는지도 모르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feat. 20년차 무신론자)


   어떤 방식으로든 상실을 겪은 사람들과 그 반응을 끊임 없이 묘사하는 책을 읽다보니 내가 '상실'한 건 무엇인가에도 생각이 미쳤다. 그러게, 내가 잃은 건 뭐지. 응당 누려야 할 변호사로서의 밝은 날들이 1년 늦춰진 것? 시험 후 한참 상상했던 변호사로서의 미래? 젊은 날 지하 열람실에 갇혀있어야 하는 것? 명예? 평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정확히 짚어낼 수가 없었다. 내 안에는 꽤나 큰 구멍이 생겼는데 그걸 남긴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제대로 모르겠다. 다만 불합격 발표가 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학교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마냥 긴 꿈을 꾸었던 것 같은 느낌이 가시지 않았던 걸로 미루어 - 아마도 붙었다면 지금쯤 누리고 있을 그 모든 것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을까 한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뭔가가 빠져나감으로 온 상실감이 아니라 오히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새로운 감정 때문에 생긴 구멍이라는 것. 실제로 잃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갖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불행하고, 이는 능동적인 감정임에도 매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상태처럼 느껴진다는 것. 상대적 박탈감이라니. 누군지 말도 잘 지었지.


별점: ★★★☆ (★5개 만점)


[2019년 5월말쯤 쓴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