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액트] 영화와 원작 소설 비교
그냥 별 생각 없이 예매한 거였다. 쉬는 날이라 그 아침시간대에 갑자기 볼 수 있는 - 적당히 내용 있으나 너무 가볍지는 않은 - 영화가 필요했고, 엠마 톰슨 주연의 '아동법'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들어맞는 듯 했다. 법 때문에 머리 터질 것 같은데 또 보러가는 게 맞는지 일초 정도 고민했지만. 말도 안되는 코리안 블록버스터를 보고 싶진 않았다.
#딱히 스포일러는 없는 듯
꽤 피곤해 보이는 표정의 피오나(엠마 톰슨 분). 머리, 의상부터 완벽해 쉽사리 흐트러질 것 같지 않은 인상의 그녀는 역시나 동료들에게서도 무척 평판이 좋은, 런던의 가정법원 판사다. 좋은 집, 좋은 직장, 능력까지 갖춘 그녀는 마침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샴쌍둥이 분리사건을 맡아 막 해치운 참. 집에 와 한숨 돌리려는데 셔츠에 치노팬츠 차림을 한, 꽤 탄탄해 보이는 몸을 가진 남편 잭(스탠리 투치 분)이 말을 건다. 나 곧 바람 피울 것 같아.
그 찰나 법원 서기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백혈병 걸린 소년이 긴급하게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신앙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어 병원측이 강제집행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고비는 모레 즈음. 피오나는 급하게 기일 지정을 하고 그 사건 뒤로 숨기로 했는지, 앞에 서 있는 잭과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저 간단한 언쟁뿐. 잭은 마지막 섹스가 언제였는지 기억이나 하냐며 매달리지만, 피오나는 그 간단한 언쟁에 쓸 여력도 없는 것처럼 이내 자릴 피한다.
그리고 곧 백혈병 소년 사건으로 빠져들게 되는 피오나는 보통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
까지가 출발 비디오여행.
위에서 피오나와 잭의 옷이며 외양에 대해 언급한 것은 원작에서도 그에 대해 꽤 자세히 묘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엠마 톰슨의 스타일은 영화마다, 캐릭터마다 너무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에 더 눈여겨 보게 된 것도 있었지만.
그리고 피오나가 너무 내 스타일이었다. 짧은 머리부터 깔끔한 정장, 오리지널 가구로 가득하지만 숨막힐듯한 깔끔함 대신 너저분한 서류가 그 사이를 메우던 널찍하고 고풍스런 집의 실내까지.
덕분에 칠드런 액트라는 영화 자체는 되게 별로였지만 엠마 톰슨에 꽂히게 되었으므로 짚고 넘어간다.
- 영화평 요약: 별로.
자, 그럼. 왜 별로였냐.
말도 안되는 영화였으니까.
왜 말이 안됐냐.
피오나 시점에서 보여주지만 정작 피오나를 보여주지 않으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피오나의 일거수일투족. 그녀의 일상. 그녀의 표정. 그녀의 일. 이런 것들은 다 보여주지만 정작 그녀가 하는 생각, 그녀가 받는 느낌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완전한 실패작이다.
때문에 영화관을 나오면서 도저히 뭔 내용인지 모르겠으니 책을 사봐야겠군, 결심하게 되었으니 사실 책을 더 팔고자 하는 원작자의 빅 픽쳐였다면 할 말 없다.(영화 대본도 원작소설을 쓴 이언 매큐언이 작업했다)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피오나와 잭은 서로 사랑하고 오랜 시간 나름대로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서로 너무 바빠지면서 - 그리고 아마도 피오나의 일방적인 소통 정지로 - 본격적인 위기를 맞게 되고, 이 위기가 피오나의 전반적인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리고 그 때 우연히 수혈거부하는 애덤의 사건을 맡게 되며 그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결국 피오나가 잭에게 돌아가서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 크게 이 정도인데, 문제는 왜 피오나가 소통을 안하려고 하는지 영화만 봐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아니, 남편이 자기 바람 피울 거 같다고, 무슨 일 있으면 말 좀 하라는데 그 앞에서도 여자가 말 한 마디 안하면 당연히 그 여자한테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님? 왜 말을 안하니. 왜 말을 안하냐고!!!!!만 마음속으로 백번 외치는 동안 영화는 끝나버린다. 거의 500일의 썸머급임. 이해가 전혀 안됨.
책을 보면 피오나의 심리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샴쌍둥이 사건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 전 사건은 그저 그대로 잊혀지게 되는데, 사실 소설에서는 이 사건을 시작으로 피오나가 생명을 비롯한 너무나도 큰 가치들에 대해 법적으로 간명한 결정을 내리고 그로 인해 타인들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데 엄청난 혼란과 자괴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이는 샴쌍둥이 사건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는데 샴쌍둥이 사건이 화룡점정이 된 거랄까, 해서 피오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모멸감 때문에 결과적으론 잭과 소통할 동력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근데 이게 영화에선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어이가 없음.
사실 소설에서도 피오나는 능력 있는 판사로 일해온지 좀 되던 와중에 그 완벽주의적이고 예민한 성향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게, 그 인물 성격상 엄청난 충격이고 그 부분이 자세히 다뤄져야 독자고 관객이 그 감정선을 따라가며 이입할 수 있다.
근데 무슨 생각으로 영화에선 그 부분을 싸그리 들어낸 건가.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싶긴 한데 정말 이해가 안된다.
사실 소설도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나쁘지 읺았다 정도지, 뭐 대단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거나 그런 건 없었음. 좀 놀라웠던 건 두께가 얼마 안되고 글자도 몇 자 안되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많은 거 같아서? 뭐지 이게. 나 지금 설마 작가가 여백에서 의도한 부분을 다 읽어내버린 거?
이언 매큐언 소설은 처음이라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실망도 컸다. 번역도 별로.
영화 별점: ★★☆ (★5개 만점)
소설 별점: ★★★ (★5개 만점)
어쨌든 저쨌든 마지막은 귀엽구로 - (엠마톰슨부터 시계 반대방향) 사랑하는 엠마 톰슨, 스탠리 투치, 이언 매큐언, 리차드 에어 감독 단체샷으로.
[2019년 10월쯤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