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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쓰 Feb 13. 2020

삶과 죽음, 그 중간 어딘가

엘러리 퀸 저, [중간의 집] 리뷰

예쁜 마젠타라 기쁘게 집어들었다. (출처: yes24)


1. 대충 개괄

  엘러리 퀸의 작품들은 크게 1기, 2기, 3기로 나뉜다. 국명 시리즈가 1기, 라이츠빌 시리즈가 3기로 주로 분류되고, 엘러리 퀸 형제가 헐리웃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던 시기에 쓰인 작품들을 주로 2기 작품으로 보는 것 같다. 공식적으로 [중간의 집]은 2기의 첫 작품으로 꼽히며, 개인적으로는 1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과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고전 추리소설의 트릭과 플롯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관해 이전작들보다는 좀 더 자세하게 다루려고 하는 작가의 노력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2. 줄거리

  엘러리 퀸은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때우던 중 대학 동기인 젊은 변호사 빌 에인절과 마주친다. 둘은 우연을 축하하며 뉴욕으로 동행하기로 하고 헤어지는데, 결국 둘은 그 날 밤 뉴욕으로 떠나지 못한다. 빌의 매제인 조 윌슨이 살해된 채 발견되기 때문이다. 엘러리는 평소처럼 수수께끼에 발을 들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단서는 범인이 베일을 쓴 여자라는 것 뿐. 게다가 피해자 조 윌슨의 수상한 행적 때문에 사건은 더 복잡해져만 가는데...


3. 감상 (딱히 스포일러 없음)

  위에서도 간략히 언급했듯이 1기와 3기 사이의 느낌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1기 국명 시리즈는 내가! 추리소설의 정수를 보여주지!라는 느낌으로, 숨 쉴 틈 없이 사건이 발생하고 독자는 정말 집중해서 따라가야 한다면 3기 라이츠빌 시리즈는 정반대랄까. 플롯과 트릭보다는 사건에 연루된 인물의 심리가 훨씬 중요하게 다뤄진다. 1기가 애거서 크리스티라면 3기는 셜록 홈즈 정도로 보면 되겠다. 물론 3기는 라이츠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찧고 빻는 이야기이므로 인물 심리가 중요하게 다뤄질만한 개연성도 충분히 제공된다. 

   결정적으로, 1기는 사건의 파도가 한바탕 쓸고 가면 어김없이 다른 색의 종이에 독자를 도발하는 말이 적힌 '독자와의 대결' 부분이 나타나는데 3기는 그런 거 없다. 


   [중간의 집]은 빌 에인절과 앤드레아의 러브 라인을 비롯, 그 주위의 김볼 가문 사람들, 핀치, 심지어는 엘러리까지 각자의 심정을 다루는 데 생각보다 꽤 많은 단어를 할애한다. 1기 작품부터 찬찬히 읽어온 독자라면 다음 문장에서부터 무언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터이다.


...이 여자는 앤드레아 김볼이다. 빌은 생각했다. 그게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훼손되지 않은 풋풋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가 아는 젊은 여자들과는, 신문 사교란에 꾸준히 등장하는 젊은 여자들의 사진 속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83쪽, 배지은 역, [중간의 집] 검은숲 출판)


   물론 처음에는 굉장히 헷갈린다. 작가가 정말 스타일이 변한건지, 단순 페이크인지, 이게 대체 뭔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조 윌슨의 정체가 밝혀지고, 김볼 가족들과 조 윌슨의 유언장을 둘러싼 갈등이 펼쳐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살인 트릭도 트릭이지만, 계급 간 갈등과 자본주의(?)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한 어떤 사람의 죽음을 통해 삶의 씁쓸한 일면을 드러내는 작품. 추리소설 읽으면서 피해자가 안됐다는 생각은 오랜만에 한 듯. 중간에 나오는 재판과정과 변론 묘사도 재미를 더한다. 


별점: ★★★☆ (★5개 만점)

Q.E.D. (증명완료) - 엘러리 퀸


2020. 2. 1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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