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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쓰 Apr 01. 2020

만남의 끝

관계라는 것


  저번에 들떠서, 조금은 자랑하듯이 기록했던 새로운 만남. 어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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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그를 알게 된 계기, 알고 지낸 기간과는 비례하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번 역시 그런 경우였다. 3월 10일 즈음 만났으니 알고 지낸 기간은 3주 정도. 길지 않다. 심지어 그 사람을 많이 좋아했냐고 물으면 딱히 그렇다고 말도 못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고집스런 말투, 그 확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특유의 슬로우 모션 눈 깜빡임. 세계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있다면 자기가 해야한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뻔하게 비호감인 그를 그래도 참고 두 번, 세 번 보게 한 건 물론 내 취향인 얼굴. 그 다음은 그 거들먹거림이었다. 엄마가 매일 같이 질색하는 내 거들먹거림이라는 게, 남들 눈으로 보면 이런 건가 싶어서 호기심이 생겼다(지금은 물론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양-반이라는 결론이지만).

  첫 번째에 질려버린 그 아집이 두 번째 보니 익숙해졌고 세 번째에는 그저 흘려들을 정도가 되었다. 네 번째에는 간과했던 점들을 모두 합한 것처럼 생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새로운 면을 발견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


  네 번째 만남 이후 매일 같이 고민했다. 끝낼 것인가. 어떤 식으로 끝낼 것인가.

어차피 뻔한 결과였다. 우린 서로 맞지 않았고 만난다고 해도 처참하게 서로 물어뜯다가 얼마 안가 헤어질 것이었다. 그래도 또 모른다, 사람들도 다 뭔가 하나는 안 맞아도 참겠지, 나한테는 이게 그걸지도 몰라. 앞뒤도 안맞는 이상한 혼잣말을 내내 되뇌며 끝을 미뤘다. 그 사람과 하는 카톡도, 대화도 시들해지고 귀찮았지만 어째저째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났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꾸역꾸역 다 먹어치우는, 너무 많이 말아버린 아침 시리얼을 대하듯이 나는 그 사람을 만났다.


  결과는 대차게 차이는 것. 예견된, 어쩌면 기다렸을지도 결과였건만 망치로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끝내는 건 당연히 내 몫이라고 너무나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일테다. 마지막을 고하는 그의 카톡 메시지에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관계는 오롯이 두 사람이 하는 것일진대 내 하늘 높이 솟은 코가, 시야를 가렸던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가 힘있는 자라고 여긴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보낸 카톡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기의 감정만을 말하는, 일방적인 메시지였지만. 그 기분나쁨까지 수업료라고 여기기로 했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않았고, 멋대로 내가 주도하는 관계라고 생각했고,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았던, 결국 나란 인간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배우는데 그 정도 수업료면 나쁘지 않다.


  매번 남들에게 외향적이다, 사람을 좋아한다, 만남과 대화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백날 떠들어도 아직 부족하단 걸 알게 해준 만남이었다. 내가 상대에게 하는 것, 상대가 나에게 하는 것. 모두 돌아보고 배울 점이 있었다. 이번에 특히 와닿은 것은: 메시지는 직설적으로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기. 끝낼때도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기.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생각하기. 상대방을 존중하기.


...이 정도면 됐다. 이제 잊어버리자.


ps.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끝은 최소한 전화로. 카톡 노노. 매우 무례.

ps2. 가벼운 만남이라는 게 실제로 있긴 한가.


2020년 4월 1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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