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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쓰 Dec 15. 2020

그녀가 상실을 대하는 법

영드 [플리백]

넷플릭스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어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넷플릭스엔 추천할 만한 게 생각이 안 나요.


대신 다른 드라마가 번뜩 생각났어요. 


제발 봐,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던 보석 같은 작품 - 

올해 본 최고의 작품으로 [남매의 여름밤]과 함께 자신 있게 꼽을 수 있는 작품(기생충 올해 아니죠?).


바로, 영국 드라마 [플리백Fleabag]입니다.



한마디로, 한 여자에 대한 블랙코미디예요.

엄청 외로워 보이는 여자요.


드라마는 여자 주인공이 자기 집 문 앞에서 남자를 기다리며, 카메라에 직접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이는 연극 용어를 빌리면, '제4의 벽'을 깨고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인데요. 덕분에 시청자는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처럼, 때로는 증인처럼, 주인공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주인공은 시즌1 첫 화만 봐도(아니면 위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엉망이에요.

마침 제목인 플리백(fleabag)도 그런 뜻이래요. 엉망진창인 사람.



처음에는 단순히 성적으로 아주 자유분방한 사람일 뿐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금방 알 수 있어요. 그녀는 뭔가에서 오는 상실감을 마주 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그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계속 누군가와 섹스하려 한다는 것을요.


그럼 뭐 때문인가.


[플리백] 시즌1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단순히 어떤 사람이나 관계를 잃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아래 주인공이 느끼는 어떤 감정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 드라마 [플리백]은 주인공을 씨실로, 그 주위 인물들과의 관계를 날실로 삼아 시즌1이라는 견고한 직물을 짜내어 보여줍니다.


겉으로 얼핏 보기에 주인공인 fleabag(끝까지 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은 외롭지 않아요.

그녀에겐 오랫동안 만나고 헤어졌다 만나고 헤어지는 남자 친구 해리도 있고, 언니를 무시하기 일쑤인 파워 커리어 우먼 여동생 클레어도 있으며, 엄마가 죽은 뒤 대모와 사귀는 아버지와 그 여친인 대모도 있거든요.



우리는 플리백이 자기와 가장 가까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양상을 보면서, 주인공이 인간관계에 참 서툰,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원래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무언가 때문에 변한 걸까요? 이런 걸 궁금해하다 보면 이런 질문도 던지게 됩니다. 나는 저 엉망진창 주인공보다 과연 나은가?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나?


시즌1이 주인공이 겪는 상실의 이유를 찾는, 과거로의 여정이라면 시즌2는 현재와 미래를 대하는 주인공을 보여줍니다.


시즌2 포스터


시즌2에서 과거를 이겨낸 주인공은 이제 주위를 둘러볼 힘이 생기지만, 원래 현재란 게 만만치가 않죠. 예전엔 단지 여력이 없어 보지 못했던, 지금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면서 fleabag은 또 한 발짝 나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조금은 후련한 얼굴로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드라마의 끝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시즌2의 마지막 장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물론 온통 피범벅인 시즌2의 첫 장면도 아주 좋아하지만요.



이 쇼의 원작은 피비 월러-브리지(Phoebe Waller-Bridge)가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선보이고 수상한 동명의 1인극입니다. 1985년생으로, 올해 만 35세인 월러-브릿지는 드라마 [플리백]의 기획, 각본, 주연을 도맡아 한 천재이며, 드라마 [킬링 이브 killing eve]의 작가, 2021년 개봉한다는 대니얼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영화 [007 No time to die]의 공동작가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fleabag은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를 부르던 별명이라고 해요.


이 드라마에서 눈 여겨보아야 할 것들은 셀 수도 없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스마트한 각본, 반어법 가득한 영국식 개그, 쟁쟁한 배우들의 호연, 스타일리시한 연출 등등등 - 하지만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것은 피비 월러-브리지. 그녀의 존재, 그녀의 연기입니다. 그 자체로 fleabag인 그녀는 - 우리를 지금 발 디디고 있는 서울은 아닐지 몰라도, 이 곳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런던 한 구석으로 데려가 줍니다. 



사실 위에 쓴 거 다 필요 없고 - 그냥 진짜 너무너무 웃겨요.

꼭 보실 것을, 무릎 꿇고 권합니다.



1) 총 2개의 시즌으로 이루어진 [플리백]은 2019년에 종영된 BBC와 아마존 스튜디오의 합작 드라마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에 론칭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primevideo.com/(아마존에서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30일 무료니 한 번 이용해 보세요. 생각보다 고퀄이고 저렴합니다. 재생 중인 화면에 등장하는 배우 정보를 시시각각 띄워주는 엑스레이 기능은 정말 놀랍단 말이죠. 왜 광고를 안 하는 걸까요?


2)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은 보실 수 없지만, 어쨌든 태그 해볼래요. 히히.

#미드추천 #영드추천 #플리백 #코미디 #넷플릭스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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