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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상민 Jun 27. 2021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아이 참, 따뜻하다. 결말은 영...

노숙자 '독고'의 선행으로 책은 시작된다.

편의점 사장이 잃어버린 핸드백을

독고가 소중히 잘 맡아 돌려주면서

노숙자와 편의점 사장의 인연이 시작된다.


확실해야 해요. 이거 주인...
돌려줄 채, 책임이 있어요.
- 본문 중 독고의 대사


다른 노숙자로부터 핸드백을 지켜내고

주인 확인까지 철저히 하며

핸드백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독고의 자세에서

지금 모습이 남루할지언정,

무너지지 않은 사람 됨됨이가 엿보인다.


그래서일까, 편의점 사장은

독고를 아르바이트생으로 맞이한다.


독고가 야간 알바를 하면서 만나는

주변인들과의 이야기가

책의 핵심적인 전개 방식이다.

독고의 시선이 아닌,

그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주변인이라 칭한 그들은 다양하다.

편의점 앞에서 혼술 하는 아빠,

근처 하숙집에서 글을 쓰는 작가,

같이 일하는 편의점 알바까지.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다 다르지만

이야기 속 독고의 모습은 항상 일관적이다.



지갑 속에서 딸들이
원 플러스 원으로 웃고 있었다.
- 본문 138p


직장생활의 힘겨움을 술로 풀던 아빠에게

독고는 시원한 옥수수수염차를 건넨다.

옥수수수염차를 건네받은 아빠가

감동받고 술을 끊고.. 이런 뻔한 이야기 전개는 아니다.

아르바이트생이 부담스러워서 곧장 집으로 귀가하니

그동안 몰랐던 나를 향한 가족의 애정을 느낀다.


아빠가 고생해서 번 돈을 아끼려고

항상 원 플러스 원 초코우유만 사던

딸들의 모습로 특이하게 감동을 준다.

이 책 속에서 감동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참 독특하다.


독고 씨가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돌아서 편의점을 나섰다.
딸랑. 종이 울린 순간
선숙은 자동 반사처럼 삼각김밥 밑에 둘
편지의 내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본문 114p


소통이 막힌 아들에게 삼각김밥과

편지를 함께 줘보는 방법을 독고 씨가 권했다.

취준생인 아들과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 사이,

점점 더 오해의 골이 깊어지고 있을 때

따뜻하게 먼저 다가가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이 대목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걱정을 해주고 내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어도,

작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었는가?

내 마음에 집중해주는 사람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찾고 있는 게 아닐까.


담담하면서도 우직한 그 몇 마디가 든든해서

따뜻한 감동이 오는 그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제목부터 불편한 편의점은

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편의점에

과하게 따뜻한 독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계를 허무는 친절함에

외로웠던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위로를 받는다.


특히, 독고의 배경이 노숙자라는 점은

사람의 귀천이 없다는 주제도 이어진다.

말을 좀 더듬거리긴 해도 성실히 일하며

항상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똑 부러지게 일하는 그가

노숙자였다고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책의 말미에서 고꾸라진다.

독고가 사실 의사였고, 의료사고로 인해 노숙자가 되었고

기억을 찾은 그는 대구로 코로나 봉사를 떠나며 마무리된다.


독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대목인가,

정말 실망스러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시국과 굳이 연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백번 양보해서 독고의 따뜻한 품성을

시대적 흐름에 맞게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라 해도,

갑자기 의사 이야기라니.

그동안 쌓아온 이야기의 틀이 어긋나는 느낌이다.

내가 느꼈던 주제의식과도 완전히 비껴간다.


차라리 마지막 부분은 잘라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찌 됐건 책의 핵심 이야기만큼은 참 좋았다.

결말 부분에서 엎어지면서

내 글도 다시 주제를 잃어가고 있지만


그저 따뜻하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속 담겨있는 메시지와 설정이

현대 사회의 여러 모습을 조망하는 것 같아

참, 따뜻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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