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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상민 Jan 09. 2019

1. 아련한 안개 냄새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읽고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손에 집은 이유는 별거 없었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책 추천을 보고 무심결에 끌려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서유럽 시절 이야기를 쓴 책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스가 아쓰코 그녀가 밀라노에서 살며 겪은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에세이답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적은 느낌이 난다.


스가 아쓰코의 글쓰기 방식은 특별할 게 없었다. 

너무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에세이 서술 방식은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다만 그래서 그렇게 인상 깊지는 않았다. 마지막을 볼 때까지는.

단 하나의 책도 아닌 한 챕터만 읽었을 뿐인데, 소름이 돋았다.

읽다가 지루해 덮을까도 했었던 나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글을 구성하는 감각이 정말 놀랍다.

몇몇 챕터는 상당히 인상 깊었지만, 또 몇몇 챕터는 별 감흥이 없기도 했다.

따라서 인상 깊었던 몇몇 챕터를 골라서 후기 글을 쓰고자 한다.



아련한 안개 냄새


이번에 글의 대상이 될 챕터는 책의 첫 번째 챕터이자, 밀라노의 안개 이야기를 다룬 『아련한 안개 냄새』다. 

밀라노의 짙은 안개로 인해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밀라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챕터다.

밀라노의 안개가 짙다 못해 '둑'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운전면허가 없기에 운전자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안개로 인해 앞이 안보였던 경험은 있다.

짙은 안개는 시야를 가리기에 운전자에게는 상당한 위험으로 작용한다.

안개 끼는 날이 드문 우리나라에서 '안개'란 위험한 것 혹은 운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밀라노 사람들은 안개가 친숙하다.

겨울철 안개는 밀라노 사람들에게 일상이었기에 그들에게 안개란 무엇일까? 

밀라노 누군가에겐 자부심, 누군가에겐 일상, 또 누군가에겐 아픈 기억이 될 수 있다.

사람마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환경적인 요인들이 영향을 미쳐 똑같은 안개도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한 친구는 자주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왕 할 거면 최고가 되어라"

그렇게 맘에 드는 말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최고'에 많이 집착하고 신경 쓰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밀라노 사람들에게도 안개는 그렇지 않을까?

세계에서 최고로 짙은 안개! 밀라노 사람들에겐 큰 자부심이다.


어릴 적부터 안개와 함께 살던 밀라노 사람들에게 안개는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안개 낀 날에 운전하는 것이 익숙한 밀라노 사람들은 과감하게 차를 몰고 다닌다.

밀라노 사람 곁에는 항상 안개가 있기에 미처 신경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여타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풀던 마지막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짙은 속 안갯속, 마중 오지 않는 동생은 이미 글라이더 사고로 큰 변을 당하고 만다.

그들에게 안개란 원망의 대상이 되었을까.

안개가 전해준 소식이 너무나도 슬프기에, 그때 내 눈 앞 안개는 무척이나 흐렸다.

짙은 안개가 끼는 날마다, 그 가족들은 동생을 잃은 그 날을 다시 떠올리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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