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상민 Jan 13. 2019

2.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읽고

스파카나폴리의 '서민문화'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챕터는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였다.

이 챕터에서는 이탈리아의 '스파카나폴리'지역에서 거주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스파카나폴리는 '서민문화'라는 커다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스파카나폴리의 서민문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서민문화라는 말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심상을 떠올릴 수 있다.

서민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서민문화라고 하면 어쩐지 악착같으면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형상이 떠오른다.

없는 살림에서도 최대한 살아가려는 끈질진 생명력이 엿보인다.


스파카나폴리의 서민문화에도 유사한 점이 있다.

트럭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자신의 가게 앞에 앉아서 돈을 내지 않으면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아주머니의 행동,

그리고 그런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머니를 칭찬한다던지, 칭찬하는 스파카나폴리만의 서민문화.

좁은 길목을 떡하니 막고 앉아있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그러한 끈질긴 서민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아주머니 이야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야기 속 스파카나폴리의 아주머니 행동은 이기적이다 못해 개인 재산의 자유를 남용하는 수준이다.

자유의 남용으로 타인 혹은 공공선에 위해를 가하는 사회도덕과 질서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만약 어떤 부자가 개인 사유지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지역을 사들이고 이동을 통제한다면 어떨까?

아파트 단지에서 거주자 이외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통제한다면 어떨까?

개인 재산권을 과도하게 남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리의 남용을 우리는 용납하기 어렵다.

그러나 스파카나폴리에서는 그들만의 서민문화 속에서 허용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 번째로, 두 사회 간의 신뢰와 문화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재산권의 허용 범위를 논할 때는 타인의 권리 침해 차원과 공공재적 차원을 고려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의 과도한 재산권 행사가 많은 손해를 발생시킨다고 생각될 때 권리를 제한한다.


스파카나폴리에서는 사회적 신뢰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아주머니가 트럭 운전사에게 큰돈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푼돈 정도를 요구한다.

이 푼돈을 한 두 푼 모아서 아껴 알뜰하게 살 수 있겠지만,

과연 돈을 받는 아주머니도, 돈을 내는 트럭 운전사도 이해타산적 관계로 돈을 주고받을까?


하루에 그 조그마한 길목으로 지나가는 트럭은 몇 대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몇 푼 되지도 않는 푼돈을 위해 아주머니가 길목에 앉아있는 건 그렇게 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기회비용 차원에서 더 이득이 될 수 있다.


트럭 운전사 입장에서도 통행료로 지출하는 돈이 클 경우, 다른 경로로 트럭을 몰 가능성이 높다.

통행료를 비용에서 큰 요인으로 계산하고 있지 않기에 계속 그 경로로 다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금전적 교류를 아주머니의 악착스러움, 알뜰함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서로를 향한 인사치레, 혹은 문화적 교류 등으로 이해하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그렇게 돈을 건네며 한두 마디 건네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로, 이야기의 배경적 차원이다.

많고 많은 유럽의 도시 중 스파카나폴리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나오는 이유는 뭘까?

유럽 사회에서 스파카나폴리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좋지 않음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싶다.

스파카나폴리 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이 그들의 악착스러움, 알뜰살뜰함을 직접 경험하고

그 개인적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이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수 있다.

외부인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스파카나폴리의 서민문화는 외부인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지독한 친밀성의 스파카나폴리


악착스러움 하나만으로 스파카나폴리의 서민문화를 대표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채소가게 아주머니에게 바가지도 쓰고, 손수건도 반강제로 빼앗기긴 했지만

가족의 식탁에도 저자를 불러주는 환대는 스파카나폴리의 서민문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외부인들이 보는 스파카나폴리의 평가는 좋지 않거나 극과 극이다.

저자도 처음에는 스파카나폴리만의 무례함에 당황스러움을 느꼈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스파카나폴리 사람들은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스파카나폴리만의 끈끈한 서민문화 아닐까?



다각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인문


스파카나폴리의 사례처럼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단순히 하나의 개인적 경험만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벅차다.

스파카나폴리만의 문화도 뭐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답이 정해져 있기 않기에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었고, 또 쉽게 속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문사회가 더욱 재밌지 않을까?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했고, 인문의 복잡함을 일깨워준 이번 챕터는 매우 강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아련한 안개 냄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