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일의 집을 짓다. 글을 짓다. 지어 [지어] 지으니 [지으니]
- 그 아홉 번째
- 살아보기
300일 정도 되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살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살았던 그 한 해는 내생에 잊지 못할 더없이 아름다운 추억만 가득했다.
여름이 지나가는 계절 속에서는 반딧불이가 참 많기도 하였다. 그 신비하고 아름다웠던 반딧불이, 속도도 느릿하여 손을 오므리고 잡기도 좋았는데 오므린 손안에 잡히면 가만히 숨죽여 신비한 초록 불빛만을 깜빡깜빡 쏟아내었다.
그렇게 풀어준 반딧 불이는 덥석 날아가지 않고 서서히 날개를 펴서 날아간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그 신비로운 불빛들은 흡사 우주 속 별들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영원한 시간 속 우주여행을 하는 것 마냥.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반딧불이가 내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 반딧불이
피폐했던 내 삶에 이토록 다정한 반딧불이라니.
살면서 운에 기대어 산건 아니지만 간절하게 원하는 순간순간마다 참 운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놀이공원에서 줄을 서면 늘 앞에서 차례가 끊겼고,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면 늘 앞에서 만원이 되어 못 탄다
음식점을 찾아가면 휴무가 다반사이고, 휴무가 아니면 폐업, 폐업도 아니면 상중 상중도 아니면 해외여행,
다급하게 뛰어가지만 버스는 가차 없이 떠났고, 다급하게 내려가지만 지하철은 어김없이 출발했다.
다급하게 뛰어가지만 신호등은 언제나 빨간불로 바뀐다, 다급하게 집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엄마는 집을 나간 후였다.
언제나 조금씩 늦었고 언제나 조금씩 놓쳤다. 언제나 조금씩 기다려 달라고 빌었지만. 언제나 조금씩 멀어져 갔다. 이런 나에게도 기회라는 것이 온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 곤 했다.
살면서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온다고 해서 내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 나의 우주 속으로 반딧불이가 날아들었다. 유영하는 별빛처럼 유유히 내 앞을 질러가는 반딧불이, 손에 잡히면 잡히는 대로 가만히 불빛을 내비치고 손을 펴 날리면 서둘지 않고 천천히 떠오른다.
공기에 몸을 맡긴 듯, 몸을 공기에 맡긴 듯, 숲 속으로 강물사이로 곳곳에서 까암빡 까암빡 신호를 보내며 나에게 건네었던 위로의 불빛들, 그대로 흘려보내라는 듯이, 가혹한 스스로의 판단에서 벗어나라는 듯이,
나는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조급했던 것이다.
조급하고 성급하게 성공과 실패를 점쳤고,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불가항력인 역학 속으로 몰아넣었다.
한 번이라도 전력을 다해 뛰어본 적도 없었고, 한 번이라도 다른 곳을 찾아 나설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신호에 걸리는 게 아니라 나도 신호에 걸리는 것이고 버스에 자리가 나든 나지 않던 나는 기다림의 방법을 받아들여야 했다.
마음을 다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는지, 노력이라고 불렀던 것이 사실 헛된 운에 점쳐진 포기가 아니었는지 나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기회 앞에서 의심을 불렀고 의심 앞에 포기를 불러냈다.
하지만 한번, 단 한 번만이라도 나는 나를 믿고 싶었다.
그것이 거짓이라도 좋았고 그것이 헛된 희망이라도 좋았다.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원하는걸 끝까지 해보고자 하는 것, 내내 불안하고 불신했던 나 자신에게 매일매일 다짐이라는 것을 해보고는 천천히 빛을 내는 그 별 하나 별 하나 내 마음에 담아 보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반딧불이의 별빛이 상에 맺힌다. 덥거나 힘들 때 꺼내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모진 시련이 불어오는 날이면 눈을 감고 그 불빛들을 꺼내어 본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려 보는 것이다.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두에게,
반딧불이를 날려 보내자,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 우리의 삶속에 반딧불이를 날려 보내자
아주 천천히 날아 우리가 만든 집으로 들어오면 그 별빛 가득한 몸짓을 “희망”이라고 불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