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일의 집을 짓다. 글을 짓다. 지어 [지어] 지으니 [지으니]
- 그 팔 일째
-데크를 만들다
현관 앞으로 데크 공사를 시작했다. 땅을 평탄화하고 기둥이 될 세 군데 땅을 파고 기초 콘크리트 철제물을 묻었다.
방부목재로 장선을 깔았다. 집 초기 바닥을 깔던 방법과 비슷하게 교차하면서 철물 많이 고정해서 튼튼하게 바닥을 깔았다.
방부 구조목으로 난간도 설치했다. 안전한 높이를 고려해서 난간 간격을 촘촘히 설치했다.
- 후회가 기회가 되는 순간
데크를 설치하기 전에는 땅에서 현관까지 높이가 꽤 되었기 때문에 사다리를 놓고 출입문을 이용했다.
사다리를 임시로 설치했기에 흔들거림이 있었고 밤이 되면 주변이 깜깜했기 때문에 되도록 밤에는 나가지
않도록 했다. 바닥에는 아직 못이 많고 공사 자재와 철물들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생긴 날 밤은 순서부터가 오류였다. 보통은 애들이 밖으로 못 나가게 현관문을 잠가놓고 첫째 아이부터 씻기고 그다음 둘째 아이를 씻기는데, 그날은 둘째 아이부터 씻겨 내보내고 첫째 아이를 씻겼고 문을 잠그는 것도 깜빡 잊었다.
순식간에 둘째 아이가 현관문을 나가던 그때도 아이를 보지 못했고 꽝 하는 소리가 들려서야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사다리에 발을 잘 못 디뎌 아래로 추락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몸은 사다리에 걸쳐있었으나 머리 쪽이 바닥에 있던 철물에 찍혀 찢어지고 피가 났다. 정수리 쪽이 찢어지는 바람에 피가 엄청 많이 나는 아이를 들쳐 안고 수건으로 지혈하면서 나는 순간 정신을 잃을뻔하였다.
시속 130킬로로 시내 병원으로 달리던 길,
나는 계속 피가 나는 아이를 부여안고 처음으로 집을 지은 것에 대해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검사상 이상은 없었고 정수리 쪽 찢어진 부분이 좀 넓었지만 집고 소독하고 밤사이만 병원에서 지켜보자고 해서 그때부터는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 내선택으로 인해 아이가 다쳤다는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진 눈물을 쏟아내는 밤이었다.
살면서 종종 후회와 자책의 감정이 휘몰아칠 때가 있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의 시간을 혹독하게 견뎌냈던 밤들이 있었다
후회의 감정이 밀려오면 현재의 사건에 대해 회피하게 된다. 과거의 나한테 책임을 돌리며 이중적 자아 속에 현재의 나를 보호하려 했다. 지금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와는 별개로 책임의 이유를 찾아 자기 보호 기제의 연막을 치고는 모든 어려움에서 도망치려고만 했다.
사실 후회라는 감정을 이용해 이 무기력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집이 거의 다 지어갈 무렵 나는 은근하게 스며드는 무기력한 마음으로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아이의 다침은 그저 하나의 방편일 뿐 그것을 핑계 삼아 또다시 후회의 방어를 끌어 들어 이 무기력한 감정에 나를 잠식시켜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울고 있었을 때 "후회"의 연극 속에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의사가 무심히 한마디를 했다
"어머니, 너무 울지 마세요 아이들 종종 찢어져서 오는 경우 있어요"
어떤 동요도 없고, 어떤 높낮이도 없던 무미건조한 그 말투에서 나는 내가 하는 연극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의사가 한 말과 그 말이 건네준 단어 "믿음"에 대해 생각했다.
후회와 자책은 지금에 처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나의 욕망이고 그것을 잠재울 단어는 믿음인데 그건 내가 잘 선택했다는 믿음이 아니라 끝까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인 것이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나의 오래된 습관인 부정을 잠재울 긍정의 단어 믿음을 믿어보기로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짐했다.
다음날, 우린 방부목재를 샀고 현관 앞으로 데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언제든 열고 뛰어나와도 넘어지지 않을 튼튼하고 안전한 데크, 풍경 속에서 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데크를 만들기 위해, 망치와 못을 들고 그 어느 때 보다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공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