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일의 집을 짓다. 글을 짓다. 지어 [지어] 지으니 [지으니]
그 칠일째
-외부작업
땅의 내부가 끝났으면 외부도 함께 정리 작업을 해야 한다. 집을 짓고 난 후 남은 자재를 치우는 데는 일 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 쌓아 놓은 흙을 고르게 펴고 석축 작업도 시작했다.
공사하면서 땅을 파내기도 하고 쌓아놓기도 해서 흙을 다지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자갈 1톤 정도 마당에 깔면서 같이 다져줬다.
석축 쌓아주신 아저씨가 이런 돌도 구하려면 어려운데 다행히 땅에서 좋은 돌들이 많이 나왔다고 정성스레 잘 쌓아주셨다.
- 가다 보면 내 길이 된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
- 장기하 '그건 네 생각이고' -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된다는 장기하의 노래 가사를 참 좋아한다.
여기에서 어찌 어쩌라는 말 <이래저래 어떻게 하여.>
그렇다 이래저래 어떻게 하여 집이 완성되어 갔다.
첫째는 벌써 대학생이 되어가고 둘째는 고등학생이 되어간다. 요즘 이 나이 때 아이들을 보면 너무 일찍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목표를 정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학입시 전형이 또 바뀌면서 더욱더 이른 시간에 자신의 목표를 정해야 하고 고등학교 입학 순간부터 그것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고 기록으로 채워야 한다. 아이들은 이제 공부를 잘하는 것만 가지고 대학을 갈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다.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꿈을 갖기 이전에 목표를 가지고 그것까지도 잘해야만 겨우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개인의 특성과 목표를 일찌감치 정해서 좀 더 특성화된 인재들로 키워나가는 것은 취지는 이해해도 선뜻 공감하기는 어려워진다.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 반은 성공했다는데, 그만큼 목표를 세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일이다. 목표를 세우기까지 무수한 시련과 갈등, 그리고 용기와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목표를 세운다면 그건 내 목표가 아닐 수 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부모가 원하는 목표가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의 삶,
가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어찌어찌 살다 보면 이루어지는 게 인생에서 더 많다. 그 어찌어찌하게 산다는 건 대강대강 산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어찌 어쩌는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 하루의 목표를 향해 아니 어쩌면 매 순간의 목표를 위해 사는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인 목표를 너무 이르게 잡아버리면 우린 그 어찌어찌 라는 과정의 순간을 잘 헤아릴 수가 없다. 하고 싶은 것, 그것은 어느 순간 생기는 게 아니다. 의사나 돼 볼까. 판사나 돼 볼까. 연기자나 돼 볼까, 선생님이나 돼 볼까. 무엇이 돼 볼까.
목표적 의식 속에는 왜라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왜라는 스토리가 있으려면 무수한 이야기가 될만한 많은 요소들을 경험해야 한다.
어린 시절 아픈 엄마가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 아픈 엄마와 같은 사람들을 돌보고, 또 살리고픈 생각에 의사가 되는 건 엄마를 살리고 싶었던 아이가 가졌던 사랑이자 그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한 개인적 소망이 사회적 의식이 되는 것이다. 그저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는 것,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의사가 되는 것은 의사가 되려는 목적의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의사가 되면 엄마와 같은 사람을 고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과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 같은 목표를 가질 수는 있으나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재촉하는, 평가하는 그 목표는 어떤 목표를 말하는 것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보다는 무엇을 바라는 가를 생각해 보자. 바라는 가는 결국 바랄 희 바랄 망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 바란다는 마음은 나에게서 너에게로 향하는 마음이다.
아픈 엄마를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함께 했던 반려동물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때 행복했던 마음으로, 누군가가 힘들 때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타인을 향한 이해와 애정으로 그렇게 우리는 무수한 꿈을 꾼다.
목표를 정한다는 건 마음속 수많은 이야기들이 넘쳐 나는 것이다.
그런 시간도 과정도 생략한 채 목표만 정하고 그것만을 위한 노력을 한다면 목표를 이룰 순 있어도
해낼 수는 없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목표를 이룰 때인가, 목표를 해내는 과정 속인가,
집을 짓겠다 생각한 순간부터 수도 없이 마음속에 완성한 집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언제나 목표는 멋진 집, 그 안에 있을 나와 나의 가족의 모습.
하지만 어찌어찌 지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런 목표는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방에 널린 못과 나무들, 쌓여가는 톱밥과 매서운 추위들, 오늘 하루는 다치지 않기를 오늘 하루는 뜯어내지 않기를 오늘 하루는 너무 춥지 않기를,
아이들이 못 없이 다닐 수 있는 바닥을 만들었을 때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고 이미 나의 꿈은 멋진 집이 아니라 평평한 바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벽을 세울 때는 아이들에게 바람을 막아줄 공간이 생겼다는 게 그렇게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천장을 막아주고, 창문을 달아주고, 지붕을 세워주고, 장판을 깔아주니, 무더운 여름날이 가고 있었다. 어찌어찌 살아온 날들이 과정으로 나를 단련시켰고. 그렇게 단련된 희망들이 모여 그때서야 내가 가졌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완성된 집, 그건 내 목표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해보는 거, 그것이 무엇이라도 해내 보는 거, 그것이 진정한 목표였던 것이다.
행복은 집을 짓는 하루의 과정 속에 있었고, 그것이야 말로 내가 진정해내고 싶었던 희망이었다.
그러니, 목표는 세우는 게 아니라 이루는 것에 있고, 그것은 성공과 실패로 채점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켜가야 할 희망의 과제인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 우린 그 대답을 알고 있다. 지금 어찌어찌해서 살아가는 이 순간 속에서 온다.
어찌어찌 사는 하루, 그렇게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 가자. 조금은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목표가 주는 삶은 양날의 검같아서 항상 의식하지 않으면 조금씩 무너진다. 그러니 너무 일찍도 말고 너무 서둘지도 말고 어찌어찌 살아보자 얘들아,
목표를 가지라고 재촉하고 그것을 위해 모든 걸 걸으라 말하고 끊임없이 목표를 만들라고 하고 그것을 잣대로 평가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말해도 좋아 얘들아
'그건 니 생각이고'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가자, 나에게서 우리에게로. 그것이 우리가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목표' 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