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글짓기

300일의 집을 짓다. 글을 짓다. 지어 [지어] 지으니 [지으니]

by 마음

그 육일째


- 단열재, 지붕 싱글작업,

화장실 배관이 끝난 후 전기 작업을 시작했다. 전기공사는 인허가등의 문제가 있어 전문업체의 힘을 빌려야 했다. 전기 공사가 완료된 후 단열재 작업을 시작했다. 단열 성능이 좋은 유리섬유로 자재를 선택했다. 그런데 유리 섬유는 정말 너무 따가웠다.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상태에서 마스크만 끼고 작업을 했던 그때, 눈과 얼굴 몸이 전체적으로 따갑고 아픈 나날이 지속되었다. 뭐 하나 쉬운 작업이 없을 때였다.

단열재를 넣고 보드를 덮어 피스 마감을 했다. 화장실과 마찬가지로 보드 사이를 핸드코드로 야무지게 메꿔 주었다. 이과정의 사진은 거의 찍어놓은 게 없다. 유리섬유 만지느라 다른걸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붕은 초록색 아스팔트 싱글로 선택했다. 외삼촌이 지붕 전문가 셔서 발 벗고 나서주셨다. 조카의 집이라고 더욱더 꼼꼼히 45도 각도를 지켜주셨다. 외삼촌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사들고 오는 길에는 지는 벚꽃이 거리를 덥고 있었다. 덕분에 우린 안과 밖의 작업을 동시에 해 낼 수 있었다.

초록지붕이라고 골랐긴 한데 색깔은 청록색에 가까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부 작업

나무집의 내부는 역시 루바가 최고지만, 루바의 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다 루바로 덮으면 좀 답답할 것 같아서 1층벽 반은 루바로 반은 벽지로 마감하였다. 내 취향이 반영되길 바라며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루바작업은 속도가 꽤 났다. 길이에 맞게 자른 다음 목공본드로 한번 붙이고 타카로 못이 보이지 않게 양 옆 홈으로 쏴준다. 속도도 나고 작업도 어려운 편이 아니라서 비교적 루바를 할 때는 힘이 든 줄 몰랐다.

반은 루바 반은 벽지, 벽지 위로는 내가 좋아하는 액자를 넣었다.


벽 인테리어와 동시에 바닥도 진행되었다. 바닥은 전기 패널을 깔고 그 위에 데코 타일로 마무리를 했다.

하나씩 완성되어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2층 지붕공간은 전체적으로 루바로 다 덮었다. 벽면 쪽에는 도배를 했는데 기울기가 있어서 쉽지 만은 않았다. 루바를 반으로 잘라 몰딩을 쳤는데 몰딩 하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모든 조명은 공간에 맞게 상상해서 골라봤다. 2층 거실 조명은 꼭 새 조명으로 하고 싶었다. 새둥지처럼 아늑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 살림살이도 하나둘씩 들어온다

1층 다이닝 룸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오려서 액자로 만들어 붙었다. 모두들 이런 내 취향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일념으로 마음껏 꿈을 펼쳤다.


주방 작업을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부 싱크대에 맞게 상판 방수목재를 짜서 넣었다. 위에 방수 페인팅을 여러 번 하고 벽면에는 타일과 루바를 치고 후드 박스를 만들어 후드를 달아놓고 벽 쪽 구멍을 뚫어 바깥쪽으로 자바라를 연결했다. 그릇 선반도 몇 개 달았다.


그토록 힘들게 했던 계단도 이제 옷을 입힐 차례다. 계단마감재가 있지만 미끄럽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취향도 아니어서 아이들 키울 때 바닥에 깔았던 푹신한 매트가 생각나 두어 장 사다가 사이즈에 맞게 붙였다. 생각보다 푹신한 바닥 느낌에 기분이 좋았고 카펫을 깔아놓은 것 마냥 이쁘기도 하였다.

모서리 진곳 하나하나 몰딩을 쳐주니 마음에 쏙 드는 계단 공간이 되었다. 내부 인테리어 작업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긴 했지만 고비마다 찾아와 도와주는 사람들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 그리움 :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내부 작업을 할 때쯤, 엄마 아빠가 무척이나 많이 도와주러 오셨다. 주말마다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내려와 한걸음에 땅으로 달려와 주었다. 우리가 이 길을 선택했을 때 여러 가지 갈등이 있고, 많은 상처들이 오고 갔지만 집을 짓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부모님과의 상처와 갈등도 많은 부분 봉합되었다. 사실 이곳을 우리보다 엄마빠가 더 좋아했다. 처음 어렵게 설득해서 땅을 보러 내려왔던 순간 아빠는 땅이 주는 안락함이 좋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표정에 나도 뭔가 의기양양해졌다. 거봐 좋다고 했지? 하면서 나를 구박했던 아빠에게 핀잔으로 되갚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자라면서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대학을 가는 것도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직장을 잡아서 돈을 벌고 집안에도 도움이 되는 딸을 원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게 생겨먹었다. 공상과 상상을 좋아했고, 틈만 나면 혼자 여행을 다니고, 수동 카메라에 빠져서 청계천이며. 남대문을 하루 종일 돌아다녔고, 사진 인화를 해보겠다고 암실 동호회에 정신없이 빠져 살기도 했다.

회사는 일 년에 한 번꼴로 때려치우고 쉽게 상처받으면서도 집에는 징그럽게 붙어 있지 않았다.


아빠는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너는 상상 좀 그만하고 살아라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라는 말을 내 얼굴만 보면 이야기했다. 그래서 아빠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 집에서 아주 멀리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그런 아빠와 집을 같이 지을 때 그 어색함이 주는 숨 막힘을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 와서 친한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손이 아쉬울 때 도움을 뿌리칠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아빠는 초보고 나는 그래도 경력자니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시켜보는 거였다.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아빠는 자존심이 좀 상한 눈치였으나 내가 알려주는 대로 곧잘 배우려 했다.

"아니 아니 그렇게 말고 이렇게 타카를 박아야 밖으로 나오지 않지! 아니 아니 그렇게가 아니라 s자로 목공본드를 칠해줘야 고르게 되지.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 참내 영 제대로 안 하네. "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반장처럼 아빠를 대할 때면 아이고~ 반장님 하면서 장난스레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아빠와 집을 함께 지으며 나는 아빠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아빠는 나를 좋아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빠와 똑 닮은 내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아빠는 가끔 계곡에서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고, 낚시를 하기도 했다. 예쁜 모양의 돌을 들고 와 이것 봐라 이거 꼭 물고기 닮았지? 이것 봐라 이건 꼭 설악산을 닮았지? 여기 단풍 진 것처럼 색깔 스며든 거 봐봐 하면서 보여주었지만 그건 아빠 눈에만 보이는 상상의 모양이었다. 주변 나무 조각으로 수석 좌대를 만든다고 문방구에서 조각칼을 사 와 열심히 파내기도 하고 설기설기 평상을 만들어 "노숙"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는 거기에서 밥을 먹으면 신선이 따로 없다고 하였다.


평생 택시만 하느냐 그 좁은 공간에서 내내 시달려야 했던 아빠가 자연이 주는 넓고 풍요로움에 마음이 팔려 어린아이처럼 좋아 어쩔 줄 모르던 그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어쩌면 이곳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닌 아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의 선택은 또 다른 선택으로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계속되는 인연이 다른 사람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부 공사를 하는 동안에 사방에 오디와 산딸기가 열렸다. 아빠와 일하다가 부지런히 오디며 산딸기를 따러 다녔다. 그 공간 속에서 나는 그간에 겪어왔던 아빠의 외로움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녘에 들어온 아빠를 향해 한 번도 눈을 비벼 가며 인사를 해주지 않았다. 밥을 먹는 아빠에게 물을 한잔 따라주지 않았고 잠든 아빠에게 이불을 한번 덮어 준 적도 없다. 마주치면 도망가기 바쁘고 말을 걸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빠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필요도 없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기억이 나는 시절부터 아빠와 나는 으레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였고, 습관처럼 정해진 관계의 틀 속에서 서로의 무관심은 당연한 버릇처럼 우리 사이를 지배했다.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서로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지 못했고, 그 표정이 주는 외로움과 지침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의 관계 속으로 오디와 산딸기가 예쁘게 담긴 바구니가 들어왔고. 그 안에 아빠의 얼굴이 들어왔고, 외로움을 이해하는 내 마음이 들어갔다.


바구니에 넘쳐나는 건 오디와 산딸기 만은 아니었다.

지나간 세월 동안 담지 못했던 애정과 사랑이었고, 격려와 위로였으며, 미안함과 그리움이었다.

함빡 담긴 바구니를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면 마음이 그토록 풍요로울 수가 없었다.

아빠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 같은 집을 완성한 후, 우린 3년 가까이 살았고 다시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곳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잘 가꾸어 낼 줄 아는 사람, 더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들을 택해 땅은, 엄마아빠를 초대했다.


아빠는 그곳에서 6년 정도 머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갔다. 우리가 만든 집을 아빠는 항상 닦고 쓸고 어루만졌다. 소중한 아기 다루듯 문 하나도 세게 닫지 않았다. 나무를 사다 심어주고 꽃을 가꿔주고 골방 하나 만들어 그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 넣었다. 하루 종일 뭐가 좋은지 낡은 라디오를 고치고 수석 좌대를 만들고 컴퓨터 고스톱을 치며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 속에 있는 아빠의 모습은 언젠가 나의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좋았다.

나와 함께 했던 순간 속 어른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간다. 막걸리 한잔 마시고 지붕 위를 날았다니 듯 싱글을 입혀 주었던 외삼촌은 당뇨로 인한 다리절단으로 지금은 걷지 못하신다. 가끔 전화해 산속에서 뭐해먹고 사냐를 남발하시던 외할머니는 완성된 집도 보시고 축하도 해 주시고는 홀연히 떠나셨다. 안녕하세요를 나눴던 이웃 어르신 들도 하나 둘 사라지시고. 아빠도 그리움만을 땅에 가득 뿌려둔 채 떠났다.


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 그리움. 그 시간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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