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일의 집을 짓다. 글을 짓다. 지어 [지어] 지으니 [지으니]
그 오일
-화장실을 짓다
화장실 배관공사를 시작했다. 화장실에, 샤워기, 세면기, 정화조 자리에 물이 올라올 배관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pvc배관으로 온수기 놓는 자리에 분배기를 사서 연결시켰다. 독립기초이기 때문에 지하로 들어가 배관의 자리부터 테스트까지, 몸은 좀 구부려도 계속 확인하고 작업하는 데는 참 용이했다.
변기가 놓일 자리를 뚫어 정화조와 연결시킨다. 정화조는 이미 터를 잡을 때 묻어 배관을 빼놓았기 때문에 그곳과 꼼꼼히 연결시키면 된다. 화장실 배관이 얼추 되고 방수포를 깔았다. 역시 미장은 아무리 손재주가 좋은 우리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이 왜 전문가인지 여실히 알게 했다. 시멘트 미장의 기울기가 얼마나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물이 빠지는 기울기를 단번에 찾기는 역시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미장 후 방수시트를 덮고 방수포위에 또다시 미장을 했다. 이번에도 기울기 문제 때문에 하고 뜯고를 반복하게 되었다.
방수 석고보드로 벽체를 막기 전 단열재를 넣었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단열재 넣는 작업에 신경을 썼다.
단열재 넣고 방수 석고보드를 대고 피스를 박았으나 다시 한번 알아보니 시멘트 보드로 치는 게 맞다는 걸 알았다. 타일이 붙으면 그게 잘 떨어지기도 하고 튼튼하지 않다고 하여 애써 해 놓은걸 다시 다 뜯어내고 시멘트 보드를 사다가 다시 붙였다. 시멘트 보드로 벽을 덮고 보드가 맞닿는 부분에는 핸디코드를 발랐다. 레이저 라벨로 수평을 맞춰서 타일을 붙일 자리를 표시했다.
벽타일은 모양보다는 크게 크게 하는 게 초보자한테 작업하기 용이할 것 같아서 최대한 큰 것으로 꼼꼼히 붙였다. 그런데 바닥 타일을 하고 나니. 물이 안 빠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두 번째 미장 시 기울기를 준다고 줬는데도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나 뜯자고 하는 쪽과 그냥 가자고 하는 쪽의 싸움이 시작됐다. 앞서 말했듯이 또다시 감정의 문제로 번져 몇 날 며칠 앓아누웠고 결국 타일부터 미장까지 다 뜯고 다시 사서 깔아야 했다.
분배기, 순간온수기를 샀다. 가스연결하고, 분배기로 따뜻한 물이 화장실과 주방으로 가도록 설치했다. 집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따뜻한 물이라는 걸 만져보게 되었다. 그 따뜻한 물의 온기가 주는 느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인생은 많은 것들이 필요 없다.
약 142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사용하게 된다. 처음에는 산 폭발이나 번개등 자연현상으로 일어나는 불을 사용하다가 차츰 불을 만들어 사용하게 된다. 이 놀라운 불의 사용으로 인해 인류 문화와 진화에 지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원시적인 모습을 한 채 시내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다녔던 한 달의 시간,
나무 톱밥으로 머리에는 새 둥지처럼 나무 잔해들이 싸여있고 흙바닥 먼지며 각종 기계의 기름 떼들이 얼굴과 손바닥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목욕탕에 들어가면 주인아주머니는 젊은 나이에 아가씨가 어쩌다 저리 됐나 하는 눈빛으로 슬며시 일회용 샴푸를 공짜로 건네주기도 하였다. 나는 목욕바구니 안에 있는 커다란 샴푸통을 들어 신분을 확인시켜 줬다.
그 목욕탕의 물은 참으로 뜨거웠고 사방팔방 넘쳐났지만 그것이 주는 감동은 별로 받지 못했다. 나는 산속으로 또다시 들어가야 할 테고 한 삼일 정도는 씻는 것이 어려울 테고 머리에는 여전히 새둥지처럼 나무 톱밥이 포근하게 싸여갈 테니. 이 목욕탕 물을 가방에 넣어가면 좋으련만 아니면 한 대야만 가지고 가면 참 좋으련만. 물이 넘치는 걸 아까워하면서 저 물이 흘러 우리 집으로 흘러가 수도꼭지를 돌리면 콸콸 나왔으면.. 하는 상상에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그렇게 혼자 웃는 모습에 아주머니가 그런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겠구나..)
날이 풀리고 시내 임시거처를 정리하고 땅으로 아예 이사 왔지만 문제는 화장실을 못 지었다는 것에 있었다. 여러 가지 생리 현상은 조금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휴게소 안에 화장실을 이용하면 됐지만 문제는 아직은 완전히 풀리지 않는 새초롬한 늦봄 날씨 속에서 물을 쓰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그래도 잘 씻겨야 하기 때문에 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대야에 받아 이리저리 씻겨주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저녁에 하는 의식에 엄마 아빠는 연신 물을 날라야 하고 온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는데 사방으로 물을 튀기며 장난치느라 바쁜 아이들 이었다. 그런 개구쟁이들의 모습에 기쁜 게 아니라 조금 미안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 씻긴다고 대야에 손을 넣으면 아직은 서늘한 저녁의 추위를 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다 씻고 남은 미지근한 물도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 거기다가 얼굴도 씻을 수 있고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다는 게 세상 무엇보다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씻고 난 물에 둥둥 떠있는 때들과 비누거품을 걷어내며 아이고 오늘은 더럽게 안 놀아줘서 고맙네요 이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건 정말 진심이었다.
그때 나는 인생에 있어 많은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따뜻한 물,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그거면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손이 시리지 않을 거고 새 둥지가 되어버린 나의 머리카락을 따뜻하게 닦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편함에서 오는 만족이 아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작고 소박한 곳에 있었는지 느껴지는 삶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이었다.
사방팔방 넘치는 편안함과 물건들, 많은 것들로 채우길 원하고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 했다.
더 넓은 아파트, 더 좋은 차, 더 멋진 가방들, 더 비싼 신발들.
둘 때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장난감들 메이커로 넘쳐나는 아이들 옷과 모자와 신발들.
그런 모든 것들이 산속에서는 짐이었고 따뜻한 물 한잔 보다도 의미가 없었다.
대야에 몸을 담그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은 넓은 아파트와 많은 장난감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아이들은 소유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에 지금의 순간을 불행이 아닌 행복으로 즐길 수가 있었다.
소유하고 싶은 게 많을수록 집착을 불러온다. 그건 욕심이 그려낸 불행이다.
집착은 중독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주는 화려함에 잊지 못하고 매달리게 된다. 매달리게 된다는 건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물건에 의존하게 되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물건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에 우리의 마음까지 줄 필요는 없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싶을 때 가장 소중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게 좋다. 그것이 물건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는 방법이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어렵게 만든 화장실은 우리에게 회복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건, 오래전 호모에렉투스가 불을 보며 느낀 마음
"감사"와 "소중" 함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