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일의 집을 짓다. 글을 짓다. 지어 [지어] 지으니 [지으니]
그 사흘
- 지붕합판, 타이백, 방수포, 천창 작업
지붕 합판작업이 시작되었다. 지붕 합판 작업은 말 그대로 45도 각도가 주는 위험 천만한 요소가 제일 어려웠다. 1층에 사다리를 대서 재단한 합판을 위로 올려주면 내가 지붕 끝에서 잡아당겨 올렸다.
하나가 올라오면 클립을 끼고 다시 밑에서 올려주면 내가 2층 사다리에 올라가 뼈대 사이로 손을 내밀고 합판을 끌고 잡아 올려 클립 안으로 넣었다.
못총으로 꼼꼼하게 합판을 박고 아래쪽 완성된 합판 위로 디딜 수 있게 나무 받침을 박았다. 거기 몸을 의지한 채 또 하나의 합판을 올려 장선 사이로 못총을 쐈다. 무척 위험하고 낮은 것처럼 보여도 사실, 정말 후들후들하게 높았다.
반대편도 그런 방식으로 올렸다. 합판이 무거운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각도가 만만치 않다 보니 밑에서 재단을 할 때 한 치의 오차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번 재고 표시하고 신중하고 정확하게 자른 다음 끌어올리는 게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맨 밑에 서까래는 하나하나 다듬고 나서 방수가 되는 나무로 마감을 했다. 사실 박공지붕이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지붕 덮을 때도 합판을 재단하는 게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처마에 시멘트 사이딩을 입혀 준다. 시멘트 사이딩을 재단해서 타카총으로 박는다. 기울기가 심해서 사이딩을 한 번에 두르는 게 어려웠다.
지붕 방수포 작업도 곧 시작했다. 지붕 끝 처마 부분에 먼저 후레싱을 재단하고 사포질을 한 후 후레싱을 달아주었다. 이어 방수포를 꼼꼼히 덮었다. 방수포는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매우 꼼꼼하게 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덮고 피스로 박고, 지붕과 지붕 곂지는곳, 방수포와 방수포가 겹치는 곳은 더욱 신경 써서 덧대고 자르고 하면서 작업을 했다.
다음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2층 천창이다. 미리 천창의 자리를 정해서 뚫어놓았다. 봄이 왔는 데도 계속 눈과 비가 쏟아져 하루빨리 천창을 막고 싶었으나 계속되는 작업 지연으로 이제야 붙이게 되었다.
-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산속에는 별이 많기도 했다. 여름이 되면 반딧불이도 많아서 별이 떠다니는 건지 반딧불이가 떠다니는 건지 모를 환상적인 풍경을 쏟아내기도 했다. 아이들과 누워서 천창 밖으로 보이는 별을 보며 항상 랑랑별 떼떼롱 동화를 들려주곤 했다.
랑랑별에 사는 때때롱과 메메롱이 지구에 사는 마달이 와 새달 이를 만나 놀고, 먼 미래에 사는 랑랑별로 모험을 떠난 마달이 와 새 달이는 다시 때때롱 식구들과 함께 500년 전 랑랑별로 여행을 떠난다.
먼 미래의 랑랑별은 지구와 많이 닮아 있고, 미래사회의 멋진 모습을 기대했던 마달이 형제는 랑랑별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또 다른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랑랑별의 과거는 우리의 미래이고 랑랑별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였다.
세상에 대한 이치를 깨닫지 않는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이야기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없다면 그런 동화를 지을 수 있을까. 작가 권정생 선생이 거대한 이치를 깨우친 하나의 도인처럼 느껴졌다.
선생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한 작품은 우리의 시대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들어있기에 나는 늘 이 동화를 읽으면 그것이 주는 진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인류가 창조의 행위를 한 원천은 "바른 생각"에 있었다. 문명을 발전시킬 때 개인적 욕망과 탐욕보다는 모두를 이롭게 하겠다는 인류애 속에서 바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과학은 철학과 함께 탄생했고 그 탄생의 근원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다.
과학과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인간의 욕망은 바른 생각의 창조보다는 지배적인 생각의 권력을 추구한다.
돈이 만들어 주는 지배적인 권력욕이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통제하고 불안을 이끌어 내며 기계적인 정함을 통한 지배력을 강화한다. AI가 만들어준 예측이 가능한 사회 속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2019년도에 개봉한 "1917"이라는 영화가 있다. 모든 통신망이 끊어진 전쟁터에서 주인공은 형이 있는 부대가 공격을 감행하면 함정에 빠진다는 전갈을 전해야 할 의무를 맡게 된다. 형에게 그 전갈을 전하기 위해 동료와 함께 적군이 있을지도 모를 길을 향해 무작정 나서는 그의 하루를 카메라가 끊김 없이 따라간다.
주인공은 수많은 길에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길, 목숨마저 한순간 잃어버릴 수 있는 한 치 앞도 모르는 그 순간 속에서 늘 선택을 하며 공간의 위험성으로 온몸으로 내던져 돌진한다.
그 과정에서 같이 떠난 동료도 죽게 되고, 적에게 노출되어 총알이 날아오기도 하고 자신을 도와준 민간인의 밀고로 위기에 쳐하게 되고 사력을 다해 그곳을 도망쳐야 하기도 했다. 쥐떼와 시체들 사이를 다녀야만 했고 아군을 만나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음에도 자신이 가야 하는 갈림길에서 망설임 없이 낯선 곳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주인공의 시선과 발걸음을 따라가는 원테이크 방법으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선택이 가져올 긴장감과 공포심, 또는 모험심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에 저절로 흥분되었다. 길을 바꾸어 돌아서면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지고 그 공간이 주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며 또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나가고 거기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건들이 생기게 되면서 시시 각각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국 주인공은 모든 어려움을 헤치며 함정 속으로 공격태세에 돌입한 형이 있는 부대의 사령관에서 전갈을 전할 수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 작전 중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우리가 확률에 의한 정해짐이 익숙해질 때, 과연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 또한 그 선택에 의한 결과는 확률로는 알지 못하는 기적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까. 인간의 의지 안에는 기적이라는 희망이 존재한다. 그 희망이 주는 커다란 확률은 바로 타인에 대한 애정이다.
정해진건 없다.
우리의 선택의 결과는 항상 확률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생각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이고, 그 생각은 나에게서 우리에게로 향하는 창조가 되었던 바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선택 속에서 잘될까 잘되지 않을까 하는 확률에 기대를 걸어보지 않고 바르게 생각하여 결정한다면 우린 끝내 그 임무를 수행하여 나의 가족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가족도 지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해 봄이 지날 무렵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우리가 만든 집에서 천창을 통해 별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별빛 속 랑랑별을 찾아 아이들과 무수한 꿈과 환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