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persona)를 아는가? 최근에는 '가스라이팅' 만큼이나 자주 쓰이는 단어로 '가면'이란 의미로 활용되곤 한다. 물론 페르소나의 뜻은 '가면'이 맞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예술계에서는 감독이나 작가 등이 내세우는 '분신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배우'를 의미하기도 하며, 심리학계에서는 타인에게 내보이는 외적 성격을 가리키는 용어로 활용한다.
나에게는 이 모든 뜻이 들어맞는 손위형제가 있다. 나이 차이도 고작 1살이라 매우 친하게 지냈더랬다. 나와는 달리 성격이 유순해서 나에게 잘 맞추어준 것도 있지만, 우리는 무척 닮았었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2차 성징기가 오기 전까지는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남매끼리는 닮았단 소리를 싫어하는 게 정상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오죽하면 '브라더 콤플렉스' 소리를 들었을까.
내 형제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천재'였다. 특히 자동차와 온갖 전자제품을 좋아했는데,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나 배기구를 보고 차종을 맞출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흔한 마니아 내지는 오타쿠 같은가? 자기애 넘치는 나와 달리 겸손하기까지 해서 본인도 그 정도는 아니라 점잔 떨었지만, 그는 '사진 기억력'에 가까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탓에 음질이 좋은 mp3를 사고 싶어 했다. 이 말을 듣자 그는 나보다 더 신이 나서 10가지가 넘는 여러 가지 제품들을 검색해 내게 보여주었다. 다 보고 난 후 내가 마음에 든 제품들을 봤던 순서 몇 가지를 말하자, 그 즉시 후보군의 제품명을 목록으로 만들어주었다. 전자제품의 품명은 알다시피 영어 대문자, 소문자, 숫자가 마구 뒤섞여 있는데, 그 수많은 제품명과 내게 보여준 제품 순서를 순식간에 외운 것이다!
이렇듯 나는 나와 닮았지만 동시에 매우 뛰어난 형제를 나의 '페르소나'처럼 대했다. 무척 어려운 공학 도서들도 그를 따라 이해되는 척 들여다보았고, 그의 성과를 나의 성과인 양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그는 전국에서 알아준다는 기숙사 고등학교를 들어갔다.
그리고 나 역시 얼마 뒤 다른 기숙사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 뒤의 이야기는 뻔했다. 직장을 잃고 자존심이 상한 아버지가 통학을 도와준다면서 행한 수많은 폭행과 폭언. 그 모든 현장에 나의 형제는 없었다. 타고난 머리와 유순한 성격으로 그는 부모님의 기대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기준에서 어긋났을 때 볼 수 있는 끔찍한 모습 또한 보지 못했다. 마음이 따뜻한 그는 그의 아버지를 이해했으며 애틋해했다. 그래서 서로 양보하면 싸우지 않을 수 있다는 이상론을 펼쳤다.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고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버지가 내세운 '훈육'의 배경에는 세상 버릇없는 내가 있었다. 미성년자 여성과 성인 남성 사이에 동등한 '싸움'이 존재할 수 없거늘, 그는 화해를 주선했다. 그 화해는 폭력을 두려워한 나의 일방적인 복종이었고, 해소하지 못한 폭력에 대한 반발은 때때로 발작처럼 터져 나왔다. 당사자가 자리에 없을 때에서야 간신히 욕을 내뱉으면서 울분을 토해낼 때, 나의 형제는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아버지의 폭력을 보지 못한 채 나 홀로 쏟아내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폭언을, 착한 그는 수용할 수 없었다.
착한 그는 내가 한 욕을 일러바치진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애정하는 형제가 싫어할 짓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입은 막혔다. 한(恨)을 해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자 창구가 막힌 나는 혼자 고결한 형제를 원망했다. 하지만 이내 싸운 적도 없고 나를 줄곧 걱정하던 그를 미워하는 내가 나쁜 X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내가 싸가지 없는 애인지도 몰라
그의 선의와 중립은 나의 부정적이고 왜곡된 자기 인식을 부추겼고, 서른이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을 정의하지 못한다. 그는 담배도 술도 하지 않는 이 시대의 보기 드문 청년이며, 여전히 내 생일 때에는 다정한 말과 선물을 건네는 드라마 속의 '오빠'같다. 그러나 이제 나는 가슴속 어딘가가 얹힌 것만 같아서- 그를 애정한다고 속시원히 말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