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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 Nov 19. 2024

지금 우리 사회는

앤서니 기든스 <현대 사회학> 4장

세계화는 근래에 무척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하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화'란 개념은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세계화로 부르는가? 세계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세계화는 보통 물건, 사람, 정보가 지구를 가로질러 다방면으로 점점 더 많이 흘러가는 과정들을 의미한다(Ritze, 2009). 이러한 세계화의 시작점을 꼽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의 발전 과정을 훑어야 한다. 전근대 사회는 수렵채집사회 -> 농경 사회 -> 목축 사회 -> 전통 사회/문명 순으로 발전해 왔다. 전근대 사회의 발전은 B.C 50000년 전부터 19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각각의 사회는 약간의 규모와 성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인간들은 토지에서 생산물을 얻는 일에 종사하였으며 소규모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오늘날에는 전근대의 모습이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되지만, 이는 반대로 지금 우리의 제도와 사회 모습이 인간의 '자연적' 특성과 매우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방증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결국 근대 산업 문명이 만든 세계라고 볼 수 있으며, 근대 문명의 핵심은 '산업화'로 설명될 수 있다. 산업화는 증기나 전기와 같이 인간과 동물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무생물 동력 자원의 이용을 바탕으로 한 기계제 생산의 등장을 의미한다. 산업화 기간은 대단히 짧지만, 그로 인해 사회는 이전의 사회 유형과는 대단히 달라졌으며 인류 세계에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세계적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산업화는 평등하게 공유되지 못했지만, 산업사회로 인해 근래의 대다수 인류는 농업이 아닌 공장, 사무실, 가계, 서비스업에서 고용된 형태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이전보다 사회생활이 비인격적이며 익명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실제로도 옆집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보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이 더 많지 않은가?


산업사회는 또한 최초로 민족국가를 역사에 등장시켰다. 민족국가는 전통적인 국가의 모호한 경계선보다 더욱 분명한 경계선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정치적 공동체를 말한다. 전통 문명에서 정치적 권위는 자급적인 지방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의 관습과 풍습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교통과 통신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이것은 잘 통합된 전국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경계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통해 시민 생활의 많은 부분에 광범위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전통적인 국가의 정부 형태보다 더욱 발전되고 강화된 정치 체제도 산업화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은 결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대적인 생산 공정 자체도 군사적인 용도로 쓰였으며, 산업사회는 훨씬 발전된 무기와 군대 조직의 활용을 가능케 했다. 그 결과 전쟁 방식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고, 서구적 생활 방식은 월등한 경제력, 정치적 통합, 군사적 우월을 바탕으로 급격하게 확산될 수 있었다.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 국가들은 압도적인 폭력으로 전통 문명이 차지하던 많은 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서구의 식민주의는 정복지의 자원을 약탈하고 서구의 빠른 경제 개발을 위해 해당 지역의 발전을 효과적으로 저해했다. 당시의 식민지들은 오늘날 독립국이 되었지만 식민화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다. 개발도상국(저자는 이 표현을 반대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함을 밝힌다)은 서구 사회에서 형성된 민족국가 모델을 본뜬 정치체제의 변화와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처럼 세계화의 과정은 단순히 현대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고 꽤나 긴 기간에 걸쳐 발생했다. 그럼 근대와 구분되는 작금의 세계화의 요소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변화를 세계화로 규정할 것인가? 최근의 세계화 과정은 단연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현대의 세계화 역시 크게 경제적, 사회 문화적, 정치 조직의 변화를 맞았다. 전지구적 통신의 폭발적 발달은 시간과 공간의 응축을 촉진시켰다. 경제적 변화의 경우, 전지구적 생산 과정과 노동력의 국제적 분포에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의 세계화와 끊임없는 이윤 추구로 뒷받침되는데, 그 중심에는 초국적 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소프트웨어, 미디어 등 무게 없는 고부가가치 상품들이 거래되었다. 2001년 기준으로도 전자 경제는 세계 무역의 3분의 2를 차지했으며, 국제 금융 상품 500개 이상이 100억 달러 이상의 연간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고소득 국가에서 이윤이 많이 나는 활동들을 독점하고 있으며, 글로벌 불평등이 재생산될 뿐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정치적 변화는 1989 동유럽 지역의 혁명과 1991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끝난 공산주의 몰락으로 가속화되었다. 옛 공산주의 국가들 역시 현재는 서구식 정치 경제 체제로 옮겨갔다. 공산주의의 몰락은 세계화를 촉진시켰지만, 동시에 세계화 그 자체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또 다른 정치적 변화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출현이 있다. 유엔과 유럽연합 등 정부 간 기구와 국제적인 비정부기구의 중요성이 증대됐으며 사회적 책임은 국경을 초월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불의를 알게 되었고, 전지구적인 시야의 확장은 국제 공동체의 행동과 개입을 위한 정당한 근거가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시되지만 문화적 변화도 세계화의 결과로 손꼽힌다. 세상에는 5, 6000개에 달하는 언어가 있으나 세계인구의 90%가 2%에 해당하는 몇 개의 언어만을 공유한다. 공통된 언어와 정보의 공유로 사람들은 나고 자란 지역의 전통과 관습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개인주의, 성평등, 표현의 자유, 참정권 보장, 소비를 통한 만족의 추구- 등의 가치 체계 역시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실체가 있는지, 근대와 확연히 다른 모습인지, 세계화로 인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등에 대한 문제는 초세계화론자, 회의론자, 변형론자마다 차이가 있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세계화로 인한 ''을 메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러리즘, 환경 파괴, 기후 변화, 글로벌 금융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거버넌스는 더욱 참여 지향적이고 민주적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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