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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 Nov 12. 2024

사회학 톺아보기 (2)

앤서니 기든스 <현대 사회학> 2~3장

사회학의 출발은 두 가지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사이에 있던 산업혁명이고 두 번째는 1789년에 있었던 프랑스혁명이다. 


산업혁명은 물질적 삶의 조건과 생계를 영위하는 방식에 영속적인 변화를 가져옴과 동시에 노동 착취, 환경오염 등 새로운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은 계몽사상의 결과로써 역시 가치관과 삶에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초기 사회학자들은 이 두 가지 혁명으로 인한 변화와 상태, 문제 등에 집중했다.


오귀스트 콩트는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인과적, 법칙적 일반화를 적용하는 것을 목표했다. 그는 직접적 관찰의 원리에 의한 실증주의적 접근을 시도하는 등 초기 사회과학의 틀을 다졌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간 행동은 예측이 불가능하며,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을 그대로 사회과학에 적용할 수 없기에 그의 주장은 수용되지 않는다.


허버트 스펜서는 사회가 진화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다. 사회는 구조적 분화를 거친 뒤에 기능적 적응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하며, '적자생존의 원리' 역시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여느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으나 '사회 진화'라는 관점은 뒤에 등장할 마르크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에밀 뒤르켐은 산업혁명 직후 혼란한 시기 도덕적 연대에 관심을 가졌다. 연대는 개인이 사회집단에 성공적인 통합되고 일련의 공유된 가치와 관습이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산업시대의 도래로 새로운 형태의 연대가 출현했음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근대 산업의 발전과 도시의 확장이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라는 새로운 연대 형태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 분업이 확장되면서, 서로 간의 의존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때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연대가 확립되기 전에 이미 오래된 가치는 영향력을 상실한 불안정한 상태를 '아노미'라 칭했다.


그는 또한 인간 행위를 제약하거나 이끄는 제도들이나 행위의 규책들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를 사회적 사실이라 이름 붙였으며, 우리는 이러한 규칙들에 종속된다고 보았다. 개별적 상호작용과 별개로 사회적 사실은 실재하고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데,  대표적인 예로 자살률과 종교가 있다. 자살률과 종교는 개인의 선택 같아 보이지만, 사회적 사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규칙적 패턴이 존재하기에 사회학적 방식을 적용하여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강단 사회학의 발전을 이끌었으나 오늘날에는 급진적 사회 변동을 설명하는 데 덜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뒤안길을 걷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도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를 설명하려 시도했다. 다만 그는 추상적 사상이나 이상에 의한 사회변화는 부정하고 대신 경제적 문제를 사회적 제도에 연결시켰다. 그는 자본주의적 기업 활동에 내재하는 두 가지 중추로 자본과 노동을 꼽았다. 자본가는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산업화로 농민들은 도시로 옮겨와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형성하는데, 두 계급 관계는 투쟁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두 계급 관계는 서로 의존적인 관계지만, 의존성은 심히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통제력을 갖지 못하고 자본가가 생산품을 오롯이 전유하니 말이다.


이러한 계급 간 갈등은 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보았다. 인간 사회의 역사적 발전은 구조화되는데, 일례로 과거 소규모 원시시대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생산물을 공동 소유했으며 이를 '원시 공산사회'라 불렀다. 그러나 집단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생산 양식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정착 농업과 봉건적 소유관계가 발생했다. 마찬가지로 토지 귀족의 자리를 자본가가 교체하고 봉건적 질서를 전복시켰고, 자본가 또한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전복될 것이라 주장했다. 노동자 혁명이 새로운 사회를 불러올 것이며 이 단계가 바로 공산주의 단계이다. 그가 말한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불평등의 소멸을 의미한다기보다 경제 체제가 공동 소유가 된 보다 인간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말한다.


막스 베버는 독일에서 태어나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 근대사회와 이전 사회 조직과의 차이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상대적으로 계급투쟁을 등한시했으며, 관념과 가치가 경제적 조건과 대등하게 사회 변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종교적 가치, 그중에서도 개신교 연관 가치가 자본주의적 세계관 형성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칼뱅주의라 불리는 옛 청교도는 구원과 천국이 예정되어 있다는 설을 믿었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될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이러한 염려를 진정시킬 수 있도록 선택의 표지를 찾았고, 그것이 바로 직업에서의 성공과 번창이었다. 즉, 초기 자본가들은 종교적 동기에 인도되었다.


베버는 사회학이 구조가 아닌 사회적 행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대 사회의 출현으로 사람들은 전통적 신념에서 벗어나 효율성과 합리적, 도구적 계산에 몰두하고 되었으며, 관료제의 발달은 합리화의 과정이라 보았다. 한편으로는 근대 관료제의 확산이 합리화의 철창에 인간을 가두고, 비인간화시키며 종래에는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두려워했다. 베버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전에 없던 관점일 뿐 아니라, 자본가의 모순적 행동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다. 현재까지도 이론적 분석-을 위한 발판과 기초를 제공하고 있으나 그의 시각이 유럽 중심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초창기 주요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살펴보았다. 상징적 상호주의, 현상학, 민속 방법론, 페미니즘 이론 등 후기 이론적 흐름은 미처 알아보지 못했지만, 결국 사회학의 관점은 두 가지 관점의 대립이라 볼 수 있다.

사회학은 구조와 행위 가운데 어떤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 인간의 상호작용은 합의와 갈등 중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가? 여러분의 해답은 어떠한가. 이 두 가지 관점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의 이해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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