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다미키 '지붕 위에서' -절대고독의 아름다움

[일본 근대 환상 문학 01]하라 다미키 원작, 屋根の上

by YOU EUNKYOUNG

* 하고(제기), 하고이타(제기판) 놀이 : 일본의 전통적인 놀이, 마치 배드민턴과 같은 놀이이지만, 채가 나무판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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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하며 제기판에 맞아 솟아오르자, 제기는 무척이나 높이 날아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기판으로 돌아왔다가 이번에는 마음껏 더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다시, 또다시, 몇 번이고 날아오르다가 하필 제기는 지붕 낙수받이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제기도 빙글 돌아 별일 아닌 듯 아래로 뛰어내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뿐,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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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아래쪽에서는 다시 활기차게 제기 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른 새로운 제기가 높이 춤추듯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기요, 저기요." 낙수받이에 걸려 있는 제기는 눈앞에 다른 제기가 보일 때마다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제기는 이내 사라져 아래로 내려가 버립니다.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 몇 번이나 불러 보았지만 상대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래쪽에서는 제기 치는 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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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에 가자."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주위는 어둑해지고 집집마다 불이 켜졌습니다. 낙수받이에 걸린 제기는 점차 불안해졌습니다. 지붕 위 하늘에는 초승달이 보이고,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밤이 된 것입니다. '아, 어쩌지, 어쩌지, 어떡하면 좋을까.' 하고 제기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별빛은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늘이 이토록 깊다는 것을 제기는 지금 처음 알았습니다. 별 하나하나가 모두 저마다 하늘의 깊이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겠지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고 제기는 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백, 이천, 삼천, 아무리 세어 보아도 여전히 어둠이 걷히지 않았습니다. 밤이 이토록 길다는 것을 제기는 지금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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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 치던 그 소녀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하고 제기는 생각했습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제기를 치던 소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제기판은 지금 집 안에 조용히 놓여 있겠지요. 제기는 그 소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소녀도 아마 나를 걱정하고 있을 거야, 하고 제기는 생각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제기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수를 세어 나갔습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 왔습니다. 이윽고 구름 사이에서 태양이 나타났습니다. 장밋빛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은 낙수받이에 있는 제기를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제기는 다시금 불쑥하고 기운이 솟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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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이미지 생성했습니다.



하라 다미키 (原民喜, 1905~1951)


"밤이 이토록 길다는 것을 제기는 지금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히로시마 원폭의 비극을 글 속에 담았던 작가 하라 다미키. 하지만 그가 처음 문학의 길을 걸었을 때, 그의 영혼은 세상에서 가장 맑고 몽환적인 시적 감수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지붕 위에서〉는 그가 원폭의 참상을 겪기 전, 인간의 고독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얼마나 섬세하게 응시했는지 보여주는 초기 걸작입니다.


하늘로 뛰어오르는 이미지하면 한국에서는 '그네'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미키는 일본의 정통 놀이인 하고(제기)가 하고이타(제기판)에서 뜅겨올라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낙수받이에 걸려 있던 상황을 그렸습니다. 하늘은 '그네'에게는 오르고 싶지만 더 올라갈 수 없는 곳으로 이상화하지만 <지붕 위에서>는 땅으로 가고 싶지만 갈 수 없게 하는 존재이면서, 별과 달, 밤 하늘의 아름다움, 그 깊이를 이해하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소녀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태양이 밝아오는 것도 바로 하늘입니다.


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AUSkydCRsMo?si=rrsetFCeSMTOtyV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