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환상 문학 02] 니이미 난키치 원작 赤い蝋燭
산에 사는 원숭이가 마을로 놀러 갔다가 빨간 양초를 하나 주웠습니다. 빨간 양초는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원숭이는 그 빨간 양초를 불꽃놀이 화약이라고 굳게 믿고 말았습니다.
원숭이는 주운 빨간 양초를 소중히 품고 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산속은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불꽃놀이 화약이라는 것을 사슴도, 멧돼지도, 토끼도, 거북이도, 족제비도, 너구리도, 여우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꽃놀이 화약을 원숭이가 주워 왔다는 겁니다.
“오호, 대단한걸!”
“이거 정말 멋진 물건이야!”
사슴, 멧돼지, 토끼, 거북이, 족제비, 너구리, 여우가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빨간 양초를 한번 보려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위험해, 위험해! 그렇게 가까이 가면 안 돼. 폭발할 거야!”
모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습니다. 원숭이는 불꽃놀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내며 솟구치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게 하늘 가득 퍼지는지를 모두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면 꼭 한번 보고 싶다고 모두가 생각했습니다.
“그럼, 오늘 밤 산꼭대기에 가서 한번 쏘아 올려 보는 게 어때?” 원숭이의 말에 모두들 몹시 기뻐했습니다. 밤하늘에 별을 흩뿌리듯 파앗하고 퍼져 나가는 불꽃놀이를 떠올리며 다들 넋을 잃은 듯 서 있었습니다.
드디어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 가슴을 두근거리며 산꼭대기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느샌가 원숭이는 빨간 양초를 나뭇가지에 묶어 두고 모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불꽃놀이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무도 불꽃놀이 화약에 불을 붙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불꽃놀이는 보고 싶었지만, 직접 불을 붙이러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던 거죠.
이래서야 불꽃놀이를 쏘아 올릴 수 없습니다. 결국 제비뽑기로 불붙이러 갈 담당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로 뽑힌 것은 거북이였습니다.
거북이는 용기를 내어 화약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불을 잘 붙일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아니요. 거북이가 화약 곁으로 다가가자 목이 저절로 쏙 몸속으로 들어가 버려서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비를 뽑았고, 이번에는 족제비가 가게 되었습니다. 족제비는 거북이보다는 조금 나았습니다. 목을 몸속으로 집어넣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족제비는 심한 근시였습니다. 그래서 양초 주변만 기웃기웃 맴돌기만 했습니다.
결국, 멧돼지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멧돼지는 참으로 용감한 짐승이었습니다. 멧돼지는 정말로 성큼성큼 다가가 불을 붙여 버렸습니다.
모두 깜짝 놀라 풀숲으로 뛰어들어 귀를 꽉 막았습니다. 귀뿐만 아니라 눈도 감아 버렸지요.
그러나 양초는 '팡'하는 소리 하나 없이, 아주 조용히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AI로 이미지 생성했습니다.
니이미 난키치 (新美南吉, 1913~1943)
"흥미와 두려움이 빚어낸 소동, 그 끝에 남은 고요한 불꽃"
일본 근대 동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니이미 난키치. 그는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교과서에 실릴 만큼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빨간 양초〉는 그의 전매특허인 '우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원숭이가 주워온 '빨간 양초'를 보고 산속 동물들이 벌이는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지의 존재(인간의 문명)에 대한 동물들의 원초적인 공포와, 그 공포가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습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경외심은 이후 소개할 오가와 미메이의 〈빨간 양초와 인어〉 속 양초가 가진 상징성과도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일본인의 각별한 '불꽃놀이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막 근대화하기 시작한 일본 사회에서 불꽃놀이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복원한 이 짧은 우화를 통해, 근대의 밤하늘을 수놓았던 고요한 불꽃의 정취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01. 하라 타미키, 〈지붕 위에서〉 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yusoso/6
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8FtKMyp9p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