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주 May 30. 2022

내일은 더 잘 걷기로 했다.

일 년차 허리디스크 중환자의 속사정

나는 서른다섯 살 허리디스크 환자다. 아마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꼬부랑이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중) 이름 뒤 괄호를 차지하고 있을 이 병과 친구 먹기로 한 속사정.


결혼 직후 코로나의 확산세가 심해져 4시간 거리의 친정에 발걸음 하지 못한 지 10개월 즈음되었을 무렵, 그리운 마음 감출 길 없어 기어코 어버이날에 맞춰 얼굴도장 찍으러 떠나는 날 아침에 일이 터졌다.

종종 시큼 거리며 아프던 허리가 하필 그날 '나 죽네'라며 '너도 죽어라'는 듯 나를 땅으로 끌어내렸고 그 길로 119 응급차에 몸을 실었다.


"갈 수 있으면 가보세요" 의사의 심한 정색.

혼자 서있지도 못하는 주제에 엄마 보러 서울 가겠다며 떼쓰는 내게 의사가 화를 낼만큼 확고했던 의지의 속사정은 이렇다.

 - 50대 초반의 몸으로 4, 5, 6번 척추를 중간에 두고 두 개씩, 총 6개의 철심을 박은 채 살면서 행여 허리 디스크라는 병이 자식들에게 옮을까 노심초사 살고 있는 60대 노인이 된 엄마에게

-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왼쪽 팔다리가 사이좋게 부러져 6개월이 넘는 재활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두 달 뒤 내 결혼식에서 지팡이 내던지고 버진로드 행진을 함께 해준 아빠에게

"나 아파, 허리디스크가 심하게 찢어졌데요", "다음에 봐야겠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둘째 딸 좋아하는 비빔국수 해주려고 묵은지도 꺼내 두었다며 신이 난 엄마와의 통화가 불과 어젯밤이었는데 오늘 나는 입원 수속을 밟았다.




퇴원 후 수개월은 달팽이처럼 지냈다. 뛰기는커녕 서둘러 걷지도 못했으니까. 요즘에서야 우스갯소리가 된 몇 가지 달팽이 에피소드를 풀자면,

1. 서서 밥 먹으면 소화도 배변도 잘 되는 듯? (뇌피셜)

앉아 있으면 통증이 극심해 대부분 서서 생활했다.   저녁 식사도 앉아있는 신랑 옆에 우뚝 서서  밥을 먹곤 했는데 그덕분인지 인생 최다 화장실 방문횟수를 기록한듯 하다.

 2. 맨 정신에 화장실 볼일 다 보고 남편이 바지 올려준 적 있는 사람?

마치 술주정 같은 저 문장이 내게 일어났다. 혼자 앉고 서지 못했던 입원 첫날, 아뿔싸.. 바지도 스스로 못 올린다는 걸 볼일을 다 보고 나서야 깨달았지 뭐람.. 덕분에 "자기야 내 쉬냄새 구리지.." 하며 수치심을 애써 감춰보았다.

3. 사무실 허리 빌런

손에 든 걸 자주 떨어트리는 고질병 때문에 내 주변 직원들이 꽤나 고생을 했다. 결국 그들이 "숟가락도 핸드폰도 볼펜도 목줄 차고 써라"며 우스갯소릴 해댔지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

4. 언제까지 어깨 흠칫하게 할 거야, 네 어깨를 봐~ 흠칫했잖아~

"자기야, 탁자 끝에 리모컨 좀 부탁해", "자기야, 나 양말 좀 신겨줄 수 있어?",  "자기야, 미안한데 나 발톱 깎아주세요",  "자기야, 자기야.." 간병 초보 신랑의 어깨는 날이 갈수록 흠칫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신체적인 한계는 숨 막히는 공황의 상태로 사람을 내몬다. 어느 날은 이러다 장애인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목놓아 울기도 했다. 입원 첫날엔 이동침대에 눕혀져 MRI 검사, 엑스레이, 피검사 등 여기저기 실려 다니며 병동 복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도 이 천장만 바라보며 실려 다녔구나. 무슨 심정이었을까'는 생각이 들자마자 혀 깨물고 죽고 싶었다. 그럼에도 병은 '혼자 움직일 수 없고 홀로 극복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 후에야 이겨낼 수 있으리란 믿음을 내어주었다.


창밖으로 나는 누릴 수 없는 여름이 보였다.

주말이 오면 노지 캠핑장에 가 그늘막을 치고 낮잠도 자고 김밥도 먹고 싶었다.

실컷 장을 보고 직접 들고 날라 소박한 저녁밥을 차려 주고 싶었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신랑을 깨워 홀연히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고 잠시 서울에 친구 보러 다녀오겠다고 해도 나를 걱정할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의 활기가 사그라들기 전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옷을 갈아입는데, 아뿔싸.. 전신 거울에 번개맞고 휘어버린 고목나무처같은 상체를 보자니 꼴값도 그런 꼴값이 없더라. 하지만 주저앉아 울기엔 내일이라도 고생한 신랑에게 잘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일은 그에게 옷 좀 입혀달라는 말을 하고싶지 않았다.


울 엄마가 그랬는데 사람에게는 극복할 수 있는 시련만 주어진데.

그날 저녁 아울렛으로 가 밝은 색의 운동복과 튼튼한 워킹화를 샀고 다음 날부터 매일 1시간씩 걸으며 근육에 힘을 주며 걷는 법을 익혔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땀이 줄줄 흐르고, 그마저 통증이 심할 때는 잠시 서서 숨을 골랐다. 이런 나를 행인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때면 눈을 감고 그들과 통증이 함께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럼에도 호전세가 더딘 날엔 허리 신경 주사도 맞았다.

괄시하던 영양제도 한 줌씩 먹기 시작했고 술과 담배도 멀리했다.

유창한 목표보다는 당장 가능한 일을 "했다"는 것에 집중했는데 사실 그 이상의 의미를 음미할 겨를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조금 더 잘 걸어야 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통증의 골짜기들을 성실히 부딪혔고 내일 혹은 다음 달에도 찾아올 수 있는 난조를 대비하며 일 년의 시간을 보냈다. 다음 주말 등산을 가기로 했고 지난 휴일에는 왕복 네 시간에 걸쳐 친구를 만나러 다녀왔다. 오늘 저녁엔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담은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와 따듯한 밥을 지어 한 끼 뚝딱 해치운 뒤 나무(반려견)와 함께 산책을 갈 예정이다.

일상이 회복되었다.


병세의 호전은 곧 행복이 될 수 없다. 병세가 나아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틀리다.

나를 일상 밖으로 내몰았던 신체적 한계와 고통을 온전히 마주하고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행(行)할 때 어떤 시작점이 생긴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허리의 안녕을 기도하고 급하게 움직이지 말자고 다짐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 병은 완쾌될 리 없다고 곱씹는다. 많은 이들이 함께 수고해주는 이 병치레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평생의 내 업보임을 안다.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고목나무처럼 휜 몸이라고 해서 나는 불행한가? 그런 건 모르겠고 나는 당장 내일 더 잘 걷고 싶을 뿐이다.


병은 내게 회복의 키워드를 숙제처럼 안겨줬지만 그로 인해 내일의 가치와 오늘의 노력이 선사하는 행복을 누리며 살 기회를 주었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내일 더 잘 걷기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