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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Sep 26. 2024

저도 칭찬받고 싶어요

   2학년 담임이 되었을 때 우리 반 학생 명단 중 '이한솔'이란 이름을 보고 처음부터 걱정을 했다. 작년에 지각이 많았고 수업 태도 역시 좋지 않아서 일부 선생님들로부터 한솔이를 다루기가 힘들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2학년 교실에서 처음 만나는 날에 한솔이는 빈자리에 앉지 않고 교실 뒤쪽에서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 있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 일단 교단 바로 앞 빈자리에 앉으라고 말하자 한솔이는 '너무 싫은데 시키니까 하는 겁니다'라는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지각을 하면 휴대폰 1주일 압수라는 학급 규정 때문에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수업시간에는 종종 엎드려 있어서 교과 선생님들이 수업 활동을 하는데 꽤나 애를 먹곤 했다.


 "교사도 사람이잖아. 진짜 짜증 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있는 애한테 내가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 게 눈에 보이는데, 그냥 뭐라 말하기도 싫더라고. 요즘엔 수업 시간에 자도 안 깨워. 그냥 둬. 수업시간에 따라가기 어려우면 다른 책을 봐도 된다고까지 말했는데도 계속 잠만 자."

친한 선생님에게 한솔이 문제를 이야기하자 이렇게 말했다.

 "뭔가 역할을 주는 건 어때? 아무리 맨날 잠만 잔다 하더라도 뭔가 잘하는 거나 좋아하는 게 있을 거 아냐? 정 없으면 그냥 학급활동 조장이라도 시켜봐도 좋고... 아마 한솔이란 아이는 학교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을뿐더러 아무도 자신에게 뭔가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냥 아예 다 포기해 버린 걸 수도 있어."


  그 이후로 나는 한솔이에게 학급 독서부장을 시켰다. 뜬금없이 왜 자기한테 시키냐고 할까 봐 "오늘이 17일이니까 17번인 이한솔이 해"라고까지 말했고 한솔이는 그게 뭐든 자기는 관심 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독후감을 써서 게시판에 붙여 놓아야 하며, 아무도 안 쓴다면 독서부장이라도 써서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 하면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않은 거니까 학급 규정대로 휴대폰을 1주일 압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한솔이가 처음 독후감을 썼을 때는 연습장을 찢은 종이에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로 대충 써서 게시판에 붙였었다. 나는 친한 국어 선생님에게 한솔이가 독서부장이라는 것을 수업 중에 긍정적으로 언급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선생님은 게시판에 붙어있는 독후감을 보면서 글씨는 잘 쓰지 못했지만 내용이 참신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다음 달 독후감을 기대하겠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후로 한솔이는 A4 한 장을 꽉 채울 정도로 독후감을 작성했고 나는 학급에서 '독서 최고상'을 만들어 매점 쿠폰과 함께 한솔이에게 건넸다. 비록 생활기록부에 적히는 상은 아니었지만 반 아이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상과 쿠폰을 받았던 한솔이는 큰 변화를 보였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대신 수업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으며, 수업에 따라가기 어려우니 휴대폰으로 녹음을 해도 되냐고 내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가능하면 많이 칭찬하려고 노력한다. 수업시간에 항상 마스크를 낀 채로 교과서에 그림만 그리고 있는 학생에게는 교과서에 낙서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너 그림 진짜 잘 그린다. 웹툰 같은 거 한번 도전해 봐"라고 이야기했다. 칼로 지우개를 조각하는 학생에게는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미니어처를 만드는 유명한 유튜버 같다고 칭찬했다. 분노 조절을 못해서 학교 기물을 파손했던 학생에게는 체육대회 때 축구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의도는 살짝 불순했다. 내가 이렇게 칭찬했으니 내 수업 중에는 어떻게든 참여해 보라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어떤 학생은 하루 이틀 만에 다시 엎드려 자곤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때마다 또 칭찬해서 아이를 일으켜 세우면 되니까 말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 속에는 "세상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은 없다. 말로 내뱉어져 공중에 퍼지는 순간 말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비난에는 사람을 찌르는 힘이, 칭찬에는 누군가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라는 글귀가 있다. 우리는 10대 아이들에게 너무나 많이, 그리고 너무나 빨리 하라고 강요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마음을 찌르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뭔가를 시도하거나 배우기 전에 왜 그것도 못하냐며 비난을 받는다면 아이들은 배움에 대한 흥미를 아예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오래전 우리 반에 당구장에서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학생이 있었다. 이 일로 상장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 학생이 교장실에 가서 따로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당구장'이라는 장소는 말하지 않았다. 그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뭘 할 때마다 "선생님, 저 사람 구해서 상 받은 사람이잖아요"라며 뿌듯해했다. 지금쯤이면 아마 사회인이 되어 일을 하고 있겠지만 나는 그 학생이 어디에서 뭘 하든 항상 자신감 있게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 경험한 큰 칭찬과 격려를 바탕으로 인생의 어려움도 긍정적으로 이겨낼 힘을 키웠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학생이 그때 느낀 자부심을 토대로 자신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을 세웠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그때처럼 용기 있는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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