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Oct 21. 2024

배려냐, 희생이냐?

남을 비판하듯이 나를 비판하면 욕먹을 일이 없고

나를 배려하듯이 남을 배려하면 다툴 사람이 없다.

-조정민, ‘사람이 선물이다’ 중에서-            



        

  학생 둘이 찾아왔다. 상황을 들어보니, 수련회 준비로 교실에서 춤 연습을 하다가 실수로 옆에 있는 친구 팔을 쳤고, 맞은 친구는 순간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떨어뜨린 것인데, 문제는 수리비였다. 최소 30만 원 이상이 나온다는 견적을 받았는데, 휴대전화 주인은 전액 다 받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었고 춤추던 친구는 사설 업체에서 수리받으면 10만 원대라던데 같은 반끼리 좀 배려해 주면 안 되냐는 상황이었다. 


 “저는 춤 연습을 같이하고 있지도 않았고 그냥 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제 잘못은 전혀 없는데 정식 센터에서 수리받는 거 가지고 의리가 없다느니, 친구끼리 배려 좀 해 주면 안 되냐느니 이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잖아요?”

 이 말을 들은 춤추던 친구는 이렇게 반박했다.

 “저 혼자 그냥 좋아서 춤추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수련회에 반 대표로 춤 연습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애들이 안 나가려고 하니까 저랑 몇 명이 대표로 나가기로 하고 일부러 점심시간 빼서 연습하고 있었던 건데 좀 봐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막말로 자기가 나가기 싫어해서 제가 대신 나가는 건데 수리비 30만 원 넘는 돈을 물어내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학교에서 다쳤을 때는 안전공제회에 신청해서 치료비를 보상받을 수 있지만, 물품 보상은 제외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도의적 책임으로서 피해 액수를 보상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정선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하기도 한다. 수리 비용이 너무 크게 나왔다 해도 피해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좀 깎아달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학생 간에 혹은 학부모 간에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서로 좋게 좋게 끝낼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인데 물론 쉽지는 않다.     


  특히나 둘 사이가 전부터 그리 좋지 않았거나 혹은 해당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의견이 서로 공감되지 못할 때는 ‘친구 간의 배려’라는 생각이 ‘배려의 탈을 쓴 채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쉽지 않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체육대회 중에 한 아이가 자기의 경기 모습을 친구에게 촬영해 달라고 말하면서 휴대전화를 주었다. 친구의 모습을 찍던 아이는 촬영 중에 실수로 친구의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액정에 금이 간 사건이 있었는데, 촬영을 부탁했던 학생의 부모님이 수리비용을 친구에게 청구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아무리 친구가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해도 제 딸이 부탁한 거였잖아요. 실수로 그런 건데 수리비를 청구할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반면에 친구가 자신의 농구공을 빌려 가서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원래 농구공과 같은 제품의 가격을 돈으로 달라고 한 학생이 있었는데, 친구는 자신이 빌린 농구공은 이미 오래된 거였기 때문에 새 농구공 금액의 반절만 주겠다고 해서 둘 사이를 중재하는 데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같은 반 친구라고 무조건 배려를 강요할 수는 없으며, 또한 배려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기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최대호 작가의 책 ‘내 걱정은 내가 할게’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배려는 관심에서 나오고 이해는 노력에서 나온다.”


  자신과 같은 상황이지만 입장이 다른 친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배려가 마치 몸에 밴 것처럼 잘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오늘 학급 시간에 ‘배려: 만일 나라면?’이라는 주제로 역할극을 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실수로 친구와 부딪쳐서 식판이 엎어진 경우, 똑같이 열심히 공부했지만 한 명만 성적이 오르고 다른 한 명은 성적이 떨어진 경우 등 반 아이들이 직접 상황 설정에서부터 대사까지 만들어서 역할극을 했고, 서로 역할을 바꿔서도 해보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이런 경우에 나라면 어떤 생각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식판을 엎었으면 그 애 식판도 엎어야죠.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맞지 않아요?”

 “야! 그건 일부러 한 행동이 아니잖아. 선생님! 저라면 화는 나겠지만 괜찮으니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말한 뒤 같이 바닥을 청소하고 용서할 것 같아요. 그래도 좀 억울하면 밥 먹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라고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친구 식판을 실수로 엎었다면 진짜 당황하고 미안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괜찮다고 말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원래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하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면 다른 사람도 저를 배려해 주겠죠. 근데 선생님. 남한테 배려하거나 양보하면 사실 제 기분이 좋아요. 착한 일 한 것 같아서요.”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 역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의 깊이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여유, 그리고 너그러움의 깊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리 괜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강요할 수는 없듯이, 배려 역시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 속에서 서로의 입장이 다른 경우에는 각자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우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고 이해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게 결코 희생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