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는 목표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
-생텍쥐페리-
퇴근 후 샤워를 하고 나오니,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이 보낸 무단 불참 학생 명단이었는데 그 속에서 ‘정수영’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선생님, 저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학기 초에 담임인 나에게 이렇게 다짐했던 수영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 아프다면서 종종 조퇴하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고 지각도 잦았다. 내가 훈계할 때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믿어 주세요. 진짜예요.”
라고 확신에 찬 말을 한 수영이는 며칠 뒤에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곤 했다.
많은 아이들이 작심삼일이라는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힘들어한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그래, 다시 시작해 보자’라는 긍정적인 다짐의 목표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결국엔 아예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기는 보통 고3 때 보이곤 하는데 실제 내가 가르치고 있는 3학년 중 한 학급에서는 반절도 채 안 되는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에는 소수의 아이들만 수업에 불참했지만, 고3이 되어서는 ‘지금 해 봤자, 뭐’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포기의 늪에서 아이들이 빠져나올 수 있을까?
김범준 교사가 쓴 ‘교사들의 자녀 교육법’이라는 책을 보면 아이들이 꾸준히 노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책에서 작가는,
“공부 계획서를 쓰게 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챙기고 실천해 나가려는 주체성이 발달한다. 그리고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켜본 경험은 성취감을 불러일으키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추진력 있는 아이로 만든다.”
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계획 세우기는 바른생활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도 좋다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상위권 학생들 대부분은 자신만의 스터디 플래너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리 적어 놓고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한 번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스터디 플래너에 적은 그날의 계획을 실천한 뒤 다음 날 교무실에 가져오면 확인 도장을 찍어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전교 1등부터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려는 아이들까지 내게 와서 도장을 받아 갔다.
“선생님, 어제 공부 계획을 너무 많이 세웠나 봐요. 새벽 2시까지 하고도 다 끝내지 못했어요. 그랬더니 오늘 기분도 별로예요. 앞으로는 제가 할 수 있는 양보다 80~90% 정도 적게 세우려고요. 그러면 계획을 다 지켰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고 다음 날 공부할 것을 미리 할 수도 있게 되잖아요.”
한 여학생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공부 계획을 세우게 되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공부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알맞은 공부 방법과 그날 하루 할 수 있는 공부 역량까지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 평소에는 적당한 휴식 시간을 곁들여 공부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내신 시험 준비 기간에는 자신에게 좀 더 몰아치듯 빽빽하게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강화하는 힘도 기를 수 있게 된다.
우리 반 소희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한 번은 모의고사를 본 날이었는데 그날 비가 엄청나게 와서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소희만은 달랐다.
“선생님, 오늘 1학년은 야자 안 하는 날인데 해도 될까요?”
“해도 되긴 하지. 1학년 야자실은 문을 안 열 테니까 3층 면학반 야자실 자유석에서 하면 될 거야. 근데 오늘은 석식 신청도 안 했을 텐데 저녁은 어떻게 하려고?”
“음…. 빵 사 먹으면 돼요. 오늘 모의고사 본 거 오답 정리하기로 계획을 세워서 하고 가려고요.”
소희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학년 교무실에 있는 온갖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안겨 주었다. 소희처럼 공부 계획을 스스로 세우는 것은 주변의 작은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디에잇 교육그룹의 홍순철 대표는 ‘내일 최고의 순간은 오늘 세운 계획이다’라고 언급하며 계획 세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혹은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이나 학과에 과연 들어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현재 실행하고 있는지를 보면 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 날에는 열심히 했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흐지부지해진다면 그렇게 느낀 순간 다시 계획을 세우면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작심삼일을 반복하면 되는 것이다. 한 번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다가 실천력이 흐트러지는 3~4일째가 되었을 때 다시 또 계획을 세우면 된다. 작심삼일을 열 번 하면 한 달이다. 한 달이 반복되면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계획한 대로 하려는 습관으로 물 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사람은 항상 같은 데서 넘어진다. 열심히 살아도, 환경이 바뀌어도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특정한 목적론에 따라 행동하고 그로 인해 평생 고통받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린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같은 시기에 같은 곳에서 반복적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부모와 교사가 함께 도와주고 이끌어 준다면 그 아이는 어느 순간, 실패라는 수레바퀴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힘을 기르게 될 것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