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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by 유타쌤


"아휴, 최쌤. 나 시험문제 출제 과목이 네 개야. 네 과목을 출제해야 해.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고3 아이들이 지금 수능 준비하기도 바쁜데 이 많은 과목을 들으면서 언제 제대로 공부를 하겠냐고. 도대체 고교 학점제는 누구를 위한 거야?"



학교 경력 20년이 넘은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셨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너무나 좋다. 진로와 적성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과목을 주도적으로 설계해 나갈 수 있다는 점,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개별화된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교학점제는 분명 미래 교육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며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찾을 수 있고, 교과 간 연계를 통해 융합적 사고력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여러 시행착오와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먼저, 과목이 지나치게 다양하다. 교무실 옆자리의 화학 선생님은 현재 화학Ⅰ, 화학Ⅱ, 과학사, 화학실험을 정규 수업으로 맡고 있으며, 공동교육과정과 야간 보충수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고2, 고3을 대상으로 하는 이 수업들은 단순히 시간만 채워서는 안 되기에, 선생님은 매일 수업 준비에 쫓긴다. 모의고사 일정에 맞춘 진도 조정이나 실험 수업 준비 등 수업의 질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과목을 소화하느라 수업 일정 자체를 맞추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로 인해 선생님은 효율성과 수업의 완성도 사이에서 늘 고민하며 수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일부 전문 과목의 경우 이를 맡을 전담 교사가 부족해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떠한가?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다양한 과목을 미리 들어보면서 진로 개척을 돕는다는 좋은 의도 속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른다.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서 대학교 학과를 결정하는 것조차도 너무 고민인데 이런 아이들에게 미리 과목을 선택하라고 해봤자, 아이들이 제대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진로에 맞게 과목을 신청했다가 도중에 바꾸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번 선택한 과목이 졸업 요건이나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큰 혼란을 주고 있다. 결국 진로를 탐색해야 할 시기에 선택을 강요받고, 그 선택의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진정한 흥미나 적성을 발견하기도 전에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다. 진로를 위한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고교학점제는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선택을 강요하고 그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제도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넓히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준비 부족과 혼란으로 인해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꾸준한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제도 자체가 오히려 그 발걸음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은 교사로서 아쉬운 부분이다. 교육은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 점이 과연 고교학점제가 실질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사진 출처: 송수연 작가의 '바닥의 내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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