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교사가 된 대학교 후배로부터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언니, 우리 반에 문제아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라고 말하면서 이런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것이다. 후배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맨 처음 담임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아이들을 대면하는 첫 시간에 나는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명렬표를 출력해 들고 갔다. 염색이나 화장을 심하게 했거나 교복을 줄여 입은 학생들 이름 옆에 따로 표시를 한 뒤 학기 내내 엄격한 복장 검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교무실에 들어갔더니 복장 검사에서 자주 걸려왔던 학생들 중 한 명이 내 책상 옆에 서 있었다. 그때 당시에 나는 아침 조회시간에 복장 검사를 하고 걸린 학생들은 점심시간에 교무실에 와서 청소를 시키는 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무실에 서 있는 아이가 당연히 그 날 아침에 복장 검사에서 걸린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상 옆에 서 있는 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면서, “너 벌써 몇 번째니? 아침마다 걸리고 혼나고... 점심시간마다 교무실에 오고... 지겹지도 않니?”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한 손에 쥐고 있던 영어 문제집을 슬그머니 내밀면서, “아, 그게 아니라요. 영어 질문이 있어서 온 건데... 저, 나중에 올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작고 날카로운 화살 하나가 내 가슴을 관통해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화살이 지나간 자리의 저릿한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밖으로 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오해해서 미안했다고 말할 기회조차 놓치고 말았다. 교사가 되기 전부터 ‘절대 아이들을 겉모습이나 성적으로 평가하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장이 바르지 못한 학생=문제아’라는 공식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담임으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학생들에게 고정관념을 갖고 대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다음 해 또다시 담임이 되자마자 나는 반 아이들의 과거 교내 벌점 내용을 내 파일에서 싹 지워 버렸다. 만약 파일을 열고 보았다면 분명 반 학생들이 작년에 어겼던 교내 규칙 사항들을 보았을 테고, 과거의 잘못들로 인해 나도 모르게 그 학생을 ‘문제아’로 낙인찍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 내가 맡은 아이들 대부분이 지난해에 가르치지 않은 아이들이어서 고정관념 없이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기도 했다.
숲 교육 사회적 협동조합 이한준 이사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 부적응 학생이라는 말은 사실 잘못된 표현이에요. 학교 기준에 학생이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다양한 개별 학생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학교들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지요. 따라서 그런 학생들을 어떤 방식으로 혹은 어떤 내용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런 학생들이 속해 있는 학교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교육 내용과 방법을 다르게 해야 합니다."
최근 교육부에서도 아이들을 '부적응'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켜야 하는 행동 규범들을 잘 따라가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에 따라가기 어려워하거나 혹은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을 텐데 이런 과정은 보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행동 결과만 가지고 누군가를 학교 부적응 학생이라고 낙인찍어 버리는 것은 잘못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는 학생은 있어도 ‘문제아’로 불려져야 하는 학생은 없다. 어른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만 있다면, 그래서 다양성과 가능성을 존중하는 학교가 된다면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바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