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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May 10. 2022

수업시간에 책이 왜 필요해요?

절제와 습관의 중요성

  복도에서 스마트패드를 잔뜩 들고 걸어가는 선생님을 보고 그게 다 뭐냐고 물었다.

"휴... 요즘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스마트 패드에 필기하잖아요. 교과서 대용 외에 사용하면 뺏는다고 했는데

방금 쉬는 시간에 뒷문으로 교실에 들어갔더니 애들이 드라마를 보거나 좋아하는 가수 영상을 보고 있는 거 있죠? 죄다 뺏었어요."


  휴대폰은 아침 조회 시간에 따로 제출하는데 스마트패드는 수업시간에 교과서처럼 사용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계속 소지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개인적인 용도로도 종종 사용하다 보니 이것 역시 제출하도록 해야 하나 말아야 하냐를 고민하면서 담임들은 골머리를 썩고 있다.


"아니, 어른들도 인터넷이 없으면 못 사는데 하물며 십 대 아이들은 어떻겠어요? 스마트패드도 핸드폰처럼 아침 조회 때 걷었다가 종례 때 돌려주는 게 맞다고 봐요."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고등학교 딸을 둔 선생님이 대답했다.


"우리 딸도 스마트패드를 가지고 다녀요. 수업시간에 무겁게 책이나 문제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이 그 안에 모든 파일을 다 담아서 편하게 필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근데 어느 날 딸한테 낮에 카톡이 오는 거예요. 아니, 분명 수업시간일 텐데 어떻게 카톡을 보낼 수 있는 거지? 싶었는데 눈앞에 인터넷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있고 할 수 있는 시간도 있다면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죠. 학교에서는 다운로드한 파일에 필기만 할 수 있게 하고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딸이 지금까지도 말을 안 하고 있어요. 기분 나쁘다는 거죠, 뭐."


  그 이후에 나는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스마트패드를 사용하는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수업시간에는 집중해서 필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분 정도 수업이 일찍 끝난 날에는 엎드려 쉬거나 다른 책을 펼쳐 공부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스마트패드를 가진 아이들은 죄다 이걸로 시간을 보내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쉬는 시간이니까 스마트패드로 시간을 보내는 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패드를 보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절대로 몸이 쉬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의 저자인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비처는 스마트폰으로 근시가 더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 우울, 주의력 장애, 수면 장애, 운동 부족 등 여러 부작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는 단순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침해한다. 정신 병리학에서 '사고 장애'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에 의존적일수록 장애는 더 커진다. '이 물건'을 그냥 꺼두거나 화면을 바닥으로 뒤집어 놓는 것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아예 다른 방에 갖다 놓는 것이 좋다. 

집중해서 할 일이 있거나, 타인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스마트 도구와 공간적으로 떨어지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어린 학생이건 최고 경영 자건 할 것 없이!"


  요즘 세상은 정말이지 빠르게 급변하고 있다.

교실에서 수행평가를 종이로 보는 게 아니라 학교에 비치된 크롬북을 가져다가 보며, 각종 교내 대회나 행사 참여 역시 스마트폰으로 바코드를 찍어 링크를 타고 들어가 신청한다.

아이들의 성적 역시 엑셀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구글시트에 저장돼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만 된다면 성적을 보면서 상담이 가능하다.


  수업시간은 또 어떠한가.

스마트패드에 필기하던 학생들이 한 반에 한두 명이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반절 이상이 사용한다.

올해 안에 우리 학교 전교생에게 노트북이 지급되며, 교실에는 이미 커다란 노트북 충전함이 놓여져 있다.  2025년부터 수학과 영어, 정보교과에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고 하니, 앞으로는 가방이나 사물함에 책이 가득한 모습을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옆반 친구에게 책을 빌리러 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없이 십 대를 보낸 나 같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무분별한 스마트 기계의 사용 때문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게 될지에 대해 잘 가늠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스마트 기계를 접했기 때문에 아이들 역시 어른들처럼 스스로 잘 조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초등학교 앞 놀이터에 가면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고 학원 가는 버스 안에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채 아슬아슬 걷는다. 어릴 때부터 이런 습관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갑자기 중고등학교에 올라갔으니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다면 과연 설득력이 있겠냐는 말이다. 게다가 수업시간에 스마트패드에 필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나만 패드가 없단 말이야. 나도 사줘."라고 말하면 말했지, "이제 공부해야 하니 스마트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게요.'라고 말하는 경우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기 어려운' 아이들이 교실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 수업태도가 바르며 입시 결과 역시 좋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자유와 절제를 배웠기 때문에 스마트 기기를 사용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학업에서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어려운 상황에 맞닥드렸을 때도 참고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뭔가 배울 점을 찾아내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갖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잘 어울리는 경우이다.


  독일의 소설가 장 폴 리히터는 "행동만이 삶에 힘을 주고 절제만이 삶에 매력을 준다"라고 말했다.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참고 견뎌내는 것 역시 너무나 중요하다. 이러한 '절제'는 주변 어른들로부터의 모방과 일상에서의 습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기 대문에 우리들이 어떤 어른으로 비춰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지금까지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힘쓰기보다는

그것을 제한함으로써 행복을 구하는 방법을 배웠다.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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