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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17. 2020

쉽게 쓰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필라테스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책 몇 권을 샀다. 필라테스라는 운동이 외국에서 시작되었기에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책들은 대부분 번역된 서적이다. 운동 관련 번역서를 이전에도 몇 권 접했다. 매번 느끼는 것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이 많다는 것이다. 문장이 너무 꼬여 있어서 그렇다. 근육의 명칭이나 동작의 이름 같은 고유명사가 한자어나 영어 그대로 표기된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영어식 표현 그대로 번역해 놓은 문장들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브레이크를 밟게 한다. 오랜만에 공부를 좀 해보려다 도저히 진도는 안 나가고 집중이 안되니 졸음이 쏟아진다.

카피라이터가 되기 전 번역회사에서 몇 개월 일했던 경험이 있다. 주로 일본 서적의 판권을 사서 번역해 출판하는 회사였다. 내가 맡은 업무는 윤문이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이다. 윤문 작업은 돌멩이가 가득한 자갈밭을 매는 것과 비슷했다. 맞춤법이 틀린 문장은 바른 표기법으로 수정하고, 어순이 어색한 문장은 자연스럽게 고친다. 한 문장 한 문장 다듬어 나가다 되돌아와 읽어보면 붉은 황토가 잔잔하게 덮인 비옥한 밭처럼 뿌듯했다. 내 글이 된 것만 같았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글을 꾸준히 써왔다는 이유로 맡게 된 업무는 흥미로웠지만 쉽지는 않았다. 나 역시 맞춤법에 완벽하지 않았고, 나름 수정한다고 매끄럽게 고친 문장 속에서도 어색한 표현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 한 시간 전에 팀의 리더인 과장님에게 오늘 수정한 글을 보내 검사를 받았다.  이만하면 꽤 괜찮다 생각하고 글을 보냈다. 자신 있게 보냈어도 숙제 검사받는 초등학생처럼 벌벌 떨렸다. 이미 수정해서 빨간색으로 표시 해 놓은 문장에 다시 초록색이 덧입혀졌다. 질책도 칭찬도 없이 넘겨받은 글은 내가 수정했던 글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저 쉬운 것이 아니라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맨얼굴이 예쁘지만 눈썹 라인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촉촉한 립글로스를 살짝 바르면 후광이 비치는 쌩얼 미인이 되는 것처럼. 매일 확인하게 되는 나의 실력에 누가 꾸중하는 것도 아닌데 쪼그라들었다. 좋은 문장을 쉽게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브런치에 글을 처음 쓸 무렵 글쓰기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쓰는 방법, 개성을 살린 나만의 문장을 쓰는 법, 이야기를 만드는 법까지 책만 읽으면 휘황찬란한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과 현실은 대부분 많이 다르다. 쉽게 쓰기가 참 어렵고 거기다 나만의 색깔은 어떻게 입혀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씁니다'가 나의 쓰는 방식이다. 매일의 글이 들쑥날쑥한 이유이다.

쉽지 않은 쉬운 글쓰기에 대한 글을 한 편 쓰고 다시 쉽지 않은 책을 읽을 작정이다. 천천히 곱씹으며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머리에 남는 것도 있겠지. 서둘러서 좋을 것 없다는 위안을 책갈피 삼아 책을 읽으러 간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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