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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17. 2020

소란스러운 아침은 후회를 몰고 온다

종교처럼 의지하던 체온계가 고장 났다. 아이의 감기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황이라 서둘러 A/S센터에 보냈다. 택배를 보내고 며칠이 지났다. 오늘쯤이면 수리가 됐거나 교환을 해주겠다는 연락이 와야 하는데 오지 않았다. 기다리기 초조해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했다. 느긋하게 기다리기를 잘 못하는 성격은 이럴 때 뛰쳐나온다.

“안녕하세요. 고객센터죠? 여쭤볼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체온계를 서비스 보냈는데 진행이 얼마나 됐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네. 고객님께서 보낸 제품은 택배로 받았다고 확인이 됩니다.”


“그럼 수리가 완료됐나요?”
“아직 택배 입고만 된 상태이고 이후 점검부서에서 확인 후 연락드릴 거예요.”


“얼마나 걸릴까요?”
“빠르면 일주일, 열흘 정도 걸릴 수도 있어요.”


“네? 제가 설명 듣기로는 3일에서 5일이면 된다고 했는데요.”
“아닙니다. 점검에만 5일 정도 걸리고요. 모든 과정은 열흘 정도 걸립니다.”


“네? 저희 아기가 아파서요. 어떻게 빨리 안 되나요?”
“정해진 규정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고객님만 예외로 편의를 봐드릴 수도 없고요.”


“그러면 처음부터 열흘이 걸린다고 설명해주셨어야죠. 3일에서 5일이면 된다고 하셨어요.”
“아닙니다. 열흘이 걸립니다.”


“꼭 필요할 때 체온계가 없어서 그래요.”
“아이가 아프다니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정해진 규정은 따라야 해서요.”


“조금만 서둘러달라고 부탁드려도 같은 얘길 하시겠죠?”
“점검이 되는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꼭 메시지라도 담당 부서에 전해주세요.”

딸깍.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 때는 온종일 불만을 상대할 그들을 생각해 애써 부드럽게 얘기하는 편이다. 감정노동자라는 이름표가 직업처럼 인식된다. 귀여운 아이가 ‘우리 엄마가 상담해드리겠다’는 안내멘트까지 나올 만큼 그들은 시달리고 있다. 그런 상담사에게 기본적인 매너와 배려가 있어야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편함과 때로는 황당함을 억누르고 차분히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오늘따라 전화를 끊고 나니 은근히 화가 났다.  그녀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없었다. 전화기 너머의 그녀는 시종일관 매뉴얼대로 답했다. 가끔 로봇이 읊는 대답을 듣는 것만 같았다. 그 차가움이 화를 들끓게 했다. 처음 설명 들었던 서비스 기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불편함에 피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블랙컨슈머로 오해를 사더라도 제대로 따져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수고하십니다. 방금 전화 문의했던 고객인데요.”
“아~ 네. 말씀하신 건 제가 처리할 예정이에요.”

어쩌다 수많은 상담사 중 방금 통화했던 상담사와 다시 연결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이건 반가울 때 나오는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제가 검색을 좀 해봤는데요. 방문 A/S는 당일 처리가 되고 택배로 접수하면 길게는 한 달이 걸린 사람도 있더라고요.”
“고객님 한 달은 아니에요. 그건 옛날 얘깁니다.”


“어쨌든 그게 형평성에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서울에 살았으면 방문을 했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택배로 보낸 거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럼 제품을 받은 후에는 똑 같이 바로 확인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직접 방문하신 고객님은 기다리시는 시간을 고려해 바로 처리를 해드리고 있어요.”


“저도 택배 보내 놓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요.”
“택배로 접수하신 고객님은 도착한 순서대로 연락이 갈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러니까 그게 오일 씩이나 걸린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돼서요.”
“택배가 많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고객님.”


“게다가 저는 A/S 기간 안내까지 잘 못 받았는 걸요.”
“기간은 열흘이 걸린다고 제가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휴~ 정말 어쩔 수 없군요. 제가 상담사분께 이렇게 하소연을 한다고 절차가 바뀌는 건 아닐 텐데요. 그렇죠?"

"고객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주세요. 저도 답답해서 그래요.”

딸깍.

절대 잡히지 않는 술래잡기를 한 기분이었다. 화가 풀리기는커녕 피로가 몰려왔다. 상담사 역시 반복해서 질문하는 내게 피로감을 느꼈는지 다시 로봇 같은 목소리 톤으로 마무리 인사를 하며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나도 마음이 상하고 상담사도 피로해지는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체온계가 애물단지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이런 피로감을 느낄 테다.  절대 깨지 않는 나쁜 꿈같은 고통이 반복되기도 할 것이다. 사실은 돌아오지 않는 체온계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 마음을 뒤집는 게 쉽다.  체념을 하고 나니 어느새 나의 답답함은 뒤로하고 아침부터 다크서클이 생길 그녀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다크서클이 채 밝아지기도 전에 누군가의 불편한 얘기를 듣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로봇 목소리를 가진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패일지도 모른다. 무한 반복되는 질문을 대하는 노하우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절차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은 그녀 말이 맞다. 알겠다 고맙다 오늘도 수고하시라 얘기하고 전화를 끊을 걸' 하고 후회했다. 다음 전화에서는 어떤 위트 넘치는 고객이  시시껄렁한 게그를 하나 선사해 그녀가 로봇 목소리를 꺼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후회는 화를 밀쳐냈다. 체온계가 별 거라고 아침부터 소란을 떨었다. 한동안 체온계 생각은 잊고 엄마표 손바닥 체온계로 아이를 돌볼 것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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