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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15. 2020

도전장을 내민 여자들

나의 필라테스 선생님은 삼수 끝에 필라테스 강사가 되었다고 했다. 실력이 없어서 매번 시험에 불합격한 게 아니라 살다 보니 포기를 해야 하는 사정이 자꾸만 생겼다고 했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어느 해에는 아픈 남편을 간호를 해야 했기에, 또다시 도전을 이어가던 어느 해에는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사정이 생겼기에 포기를 했댔다. 겨우겨우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나니 공부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결국에는 지도자가 되는 목표를 이루었고 여태껏 커리어를 성실히 쌓고 있다. 그 사이 아이는 초등학교에 가고 가정도 편안해졌다고 했다.

며칠 전 수업에서 이번 달이 우리가 함께 운동하는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정을 다해 가르치는 선생님과 악바리의 자세로 운동하는 나는 찰떡 호흡이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1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해왔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그보다 열심히 쌓던 커리어를 왜 포기하려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삼십 대 초반인 나의 선생님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의 수순을 밟아 왔다. 엄마가 된 후 예전처럼 직장 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터라 운동 강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필라테스 지도자에 도전했다. 나는 그녀보다 한참이나 늦은 나이에 지도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결심을 하게 된 상황이 비슷해 나도 모르게 의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도자 트레이닝을 받게 되면 고민상담을 해야지 혼자 콕 집어놓았었다.

센터를 그만둔다니 아쉬웠다.  퇴사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그녀는 여유로워 보였고 평소보다 생기도 넘치는 것 같았다.

“선생님, 퇴사하면 좋은 데로 여행이라도 가세요?”
“여행 못 가요~ 호호, 공부하려고요”
“아~ 그냥 쉬는 거 아니었어요?”
“네. 더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생겨서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그녀의 커리어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기우였다. 공부를 더 해서 한 계단 올라갈 거라는 그녀가 멋졌다. 목표를 이루고 나니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1년 동안 이루고 나면 또 새로운 목표가 생길 것이라 했다. 매년 한 가지씩 이루는 삶이 엄청난 보람이라고 했다. 얼굴이 좋아 보였던 건 목표가 있는 사람의 에너지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 같았다. 나도 꼭 하나씩 이루며 나아가고 싶었다. 그녀보다 한 참 뒤에서 나만의 레일을 깔고 달릴 것이라 생각했다. 뒤쳐졌지만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날 것만 같았다. 그날 필라테스 지도자 코스에 접수를 하고 돌아왔다. 나도 어쨌든 한발 내디뎠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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