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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19. 2020

단순한 생활에 대하여



세탁기에 빨래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일요일 오전의 에너지는 아이와 노는 일에 모두 쏟았다.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을 쓰고 나면 저녁밥을 만들 것이다. 밥을 먹고 세탁이 끝난 빨래를 개고 나면 하루가 다 갈 것이다.

아침에는 아이 등원시키고, 필라테스를 하러 간다.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샌드위치를 사서 점심을 먹는다. 엄마나 언니와 잠깐 통화를 하며 묵은 수다를 좀 떨고 나면 아이가 하원을 한다.
매일이 비슷한 단순한 생활이다. 적당히 분주하고, 나른하다가도 열을 낼 일이 생기기도 한다. 재미있을 일이 없지만 심심하지도 않다. 그렇게 단순한 날들을 보내며 1월이 반을 넘었다.


©unsplash

겨울이라 베란다에 나가는 일이 잘 없다. 창문을 열고 환기 정도만 할 뿐 발이 시린 베란다에 나가기가 꺼려진다. 모처럼 낮에 햇볕이 따뜻하길래 문을 열고 베란다에 나갔다. 긴 테이블 위에 화분 세 개가 나란히 볕을 쬐고 있다. 이사 기념으로 친구가 선물한 산세베리아 화분 두 개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 온 스킨답서스 화분이다. 식물 제배 난이도로 치면 최하의 화분들이다. 1주일에 한번 물만 주면 알아서 쑥쑥 큰다고 했다. 화분에 노랗게 바싹 마른 이파리들이 축 쳐져 있다.

매일 바지런을 떤다면서도 놓치는 일들이 많다. 살림 사는 이의 손이 닿아야  집이 반짝인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이었으면 놓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을 일들. 단순한 생활이 반복되는 일상을 감사해하다가 화분을 보고 미안해졌다. 내일부터는 더 살뜰히 챙겨야지 마음먹는다.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

적당히 놓치더라도 마침표로 가득한 빽빽한 하루보다는 느슨하고 단순한 날이 좋다. 물음표로, 느낌표로, 쉼표로, 줄임표로 남겨 둔 여백도 있어야 단순한 일상도 지루하지 않다. 내일도 그렇게 단순한 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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