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존재가 있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사업에 도움을 드리고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었다. 그 관리를 맡아하고 있었다. 이년 여를 그럭저럭 운영해 멤버가 된 숫자만 삼백 명 가까이 되었다. 부모님의 오랜 고객도 있었고, 처음 찾았지만 마음을 뺏겨 단골이 될 사람들도 있었다. 가입이 오픈된 커뮤니티이다 보니 홍보를 위해 가입한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어떤 이는 보험 상품을 홍보했고, 어떤 이는 물건을 팔았다. 가끔 올라오는 홍보성 글들은 따로 삭제를 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았다. 내 눈에는 거슬렸지만 부모님은 너무 박하게 대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어릴 때 할머니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밭에 지심을 매도 싹 다 매지 말고, 좀 나또라"
잘 자라는 마늘밭에 잡초 뽑는 할머니를 도우면 죄다 뽑지 말고 좀 놔둬도 된다고 하셨다. 날 땅을 잘 못 택해 그렇지 살려고 하는데 너무 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부모님 생각도 같았다. 그렇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ID는 '웃자 웃자'. 웃음 전도사 같은 아이디로 매일 아침 가짜 뉴스들을 퍼 나르는 사람이었다. 지난해부터 하루를 거르지 않고 온갖 유언비어와 자극적인 뉴스들을 올렸다. 글을 삭제해 달라고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본 채 만 채였다. 아침마다 커뮤니티의 새 글 알람이 울리면 기분이 상했다. 삼백 명의 회원 대부분이 나쁜 뉴스로 아침을 맞이할 생각에 속이 부글거렸다. 더 두려운 것은 누군가는 그것이 가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레드카드를 꺼냈다. 강제탈퇴.
초등학교 때 걸스카웃 활동을 했다. 여름방학이면 인근 학교의 스카우트 회원들이 모여 야영을 하는 야영대회가 열렸다. 내게 야영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캠프파이어가 아닌 극기훈련이었다. 그중 눈을 가린 채 줄을 잡고 산 길을 찾는 훈련이 가장 기대되었다. 평소 겁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세계 최고 겁쟁이이지만 이 훈련만은 좋아했다. 눈을 가려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손수건만 풀면 대낮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 12시에 온 가족이 모여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눈을 가린 채 줄을 잡고 앞사람의 뒤를 따라 출발한다. 줄은 방향을 가리키니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두 손으로 줄을 꼭 쥐고 있지만 빠르게 걸을 수 없다. 발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흙바닥에 주먹만 한 돌멩이만 밟혀도 오금이 찌릿했다. 앞에서 걷던 여자애들의 비명 소리라도 들리면 바짝 신경이 곤두섰다. 잠시 후 발아래 급류가 흐르거나 벙커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는 조그마한 물 웅덩이나 고랑이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시시하기 짝이 없는 훈련을 순식간에 인디아나 존스로 만들었다.
막연한 것은 두렵다. 어둠이 두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 너머의 것이 진실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기를 건드리던 커다란 쭉정이 하나를 쑥 뽑아내고 나자 개운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안개를 걷어내었으니. 힘 센 사람이 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