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의 나는 발리의 개들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발리 해변에는 게으른 개들이 많았다. 개는 그늘 아래서 낮잠을 자거나 잠이 깨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뛰는 개는 별로 보질 못했다. 개가 무서워 피해 다니긴 했지만 나도 게으른 여행자였다. 해변을 어슬렁거리거나 그늘에 앉아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일상이 소중하다 여기지 못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 때문이다. 떠나면 언제나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서핑을 배워보고 싶은 건 충동적이었지만 그래서 발리로 갈 수 있었다.
서핑을 배우러 꾸따의 해변으로 나갔다. 내게 서핑을 가르쳐 줄 선생님은 얼굴이 까만 스물세 살의 발리 청년 피터였다. 보드에서 넘어지는 방법부터 배웠다. 그리고 패들링 하는 법, 일어서는 방법을 배웠다. 방향을 바꾸는 법, 파도를 사이드로 타는 법 온갖 기술을 배웠지만 내가 익힌 건 일어서고 넘어지는 방법 정도였다. 수도 없이 바다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지쳐 피터에게 실력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보드에 엎드려 해안으로 들어오는 파도를 넘어 바다로 바다로 나간다. 패들링은 자연스럽고 전혀 힘이 들지 않는 것 같은데 앞으로 쭉쭉 나갔다. 멀리서 보드에 앉은 발리 청년은 파도가 오길 기다린다. 적당히 힘이 세고 큰 파도가 오자 잽싸게 엎드려 힘차게 팔을 젔는다. 그리고 단번에 일어서서 긴 파도를 옆으로 앞으로 자유롭게 탄다.
"피터, 너는 누구한테 서핑을 배웠어?"
"누구한테 배운 적 없어. 스스로 탔어."
"정말? 그럼 몇 살 때?"
"아마, 일곱 살 때쯤?"
"와 대단하다~ 파도가 안 무서웠어?"
"그냥 동네 형들이랑 같이 바다에서 놀았지"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된 그의 서핑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배우고 싶은 스포츠이지만 그에게는 그냥 생활이었다. 그제야 해변의 발리 사람들이 자세히 보였다. 서핑을 가르치는 수많은 얼굴들. 바구니에 네일 아트 재료를 담아 관광객들의 손톱을 손질해주는 할머니들. 관광객이 없는 해변의 끄트머리에서 석양이 져도 서핑을 하는 동네 꼬마들.
무료한 일상을 피해 간 그곳에서 그들의 일상을 마주하자 서글픔이 몰려왔다. 누구도 얼굴에 그늘이 없었기 때문이다. 발리 사람들이 유독 행복지수가 높은지, 내가 만난 사람들만 그랬는지 궁금했다.
다음날에도 피터를 만나 서핑을 배웠다. 한 시간 파도를 타고 잠시 쉬는 시간에는 해변에서 음료수도 마시고, 볕을 쬐었다.
"피터, 너 서울에 가 본 적 있어?"
"아니, 나는 발리를 떠나본 적이 없어."
"어딘가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
"나는 발리가 좋아. 언젠가 다른 나라에 가게 된다면 서울에 가 볼게"
돌아오고 싶어 져야 했기 때문에 떠난 여행이었다. 피터의 말에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얼른 집으로 가서 내가 사는 동네, 나의 작은 방, 내가 타는 버스와 매일 가는 회사를 좋아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는 멋진 사원보다, 화려한 쇼핑센터보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좋았다. 누군가에겐 여행일 서울의 작은 동네에서 나도 행복하게 사는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여행을 꿈도 못 꾼 몇 년 동안 이렇다 할 일탈이 없었다. 필라테스를 배우러 잠시 외출하는 것. 가끔 친구를 만나 커피 한잔을 마시는 정도가 전부이다. 그런 짧은 일탈은 내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어 떠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백 일 동안 여행을 떠났다 온 기분이다. 매일 내 하루를, 내 옆의 사람들을, 내 공간을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고되었던 시간들보다 소중해진 순간이 많은 내 하루를 나는 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웠던 100일의 우비는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