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만 가르쳤는데 엄마를 먼저 말하는구나

1인분 율이 시점- 언어 습득

by 우비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아침, 아빠 무릎 위에 앉아있다. 아빠 턱에 뾰족 뾰족 솟은 턱수염을 만져보고 싶어 팔을 뻗는다. 까칠까칠한 느낌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아빠는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아주 간절히 한 가지 단어만 따라 해 보라며 반복해 말한다.


율아, 아빠 해봐, 아~빠~. 아! 빠! 자자 다시~ 아~빠 해봐.


아빠가 힘주어 말할 때마다 벌름벌름거리는 콧구멍이 웃겨 까르르 웃는다. 아빠는 엄마를 향해 이것 보라며 율이가 아빠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며 신나게 아빠를 무한 반복한다. 주방에서 접시 씻던 엄마가 다가와 그만하라며 아빠를 말릴 때까지.


엄마랑 아빠가 대결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며칠 전 저녁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는 어디서 들은 얘기가 있다며 엄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어떤 집 아빠가 아이에게 ‘아빠’라는 단어를 무한 반복해 가르쳤는데 그 집 아이가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했다는 것이다. 율이가 엄마를 먼저 말할 것인가, 아빠를 먼저 말할 것인가가가 아빠에겐 무척 중요한 것 같았다. 엄마에게 둘 중 먼저 말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 제안을 했을 정도로. 그날 후 아빠는 나를 안을 틈만 있으면 ‘아빠’를 간절히 외친다.



엄마는 다르다. 하루 종일 엄마와 나는 둘이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하지만 아빠의 대결 신청 후에도 엄마는 나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대결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대신 보통날처럼 이런저런 많은 얘기들을 했다. 오늘 아침에는 바깥의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율아, 창 밖 좀 봐봐. 나무들이 흔들흔들거리지? 바람이 불기 때문이야. 겨울바람.

율이 밖에 나가보고 싶지? 하지만 오늘은 안돼~ 겨울바람이 얼마나 무섭냐면 손도 꽁꽁, 발도 꽁꽁 얼어붙게 하거든. 나무들도 추워~추워~ 하면서 흔들거리는 거야. 다음에 율이랑 외출할 때 혹시 겨울바람이 불어도 깜짝 놀라지 마~ 율이 볼이 앗 차가워~해도 엄마가 포옥 안아줄게.


겨울바람으로 시작한 엄마의 이야기는 세상에는 아직 내가 먹어보지 못한 맛이 얼마나 많은지와 엄마 친구 캥거루 이모가 쌍둥이 형과 누나를 키운 얘기로 흘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엄마가 흉내 내는 바람 소리가 재미있고, 눈썹과 입이 오므려졌다 펴졌다 하며 흉내 내는 동물 이야기가 웃기다.


엄마는 나를 안고 있을 때도, 잠자라고 토닥거릴 때도, 내가 혼자 누워 천정을 보고 바둥거릴 때도 언제나 얘기를 들려준다. 나도 열심히 엄마 이야기에 반응을 한다. 손을 흔들기도 하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어떨 때는 나도 모르게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 때도 있는데 엄마는 특히 기뻐한다. 율이가 옹알이를 한다며.


나는 얼른 커서 말을 잘하고 싶다. 엄마 아빠가 내 말을 못 알아들어 답답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아빠 얘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손을 흔들었는데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얘기했다.


율이, 아빠 얼굴 때리면 돼 안돼?


아니, 아빠가 재미있다고 말한 거예요. 하고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아빠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랑 이야기할 때도 늘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먹여주는 맘마 맛이 이상해서 그만 먹고 싶다고 팔짝팔짝 엉덩이를 들썩거렸는데 엄마가 기뻐했다.


율아, 그렇게 맛이 있어? 우리 아기 브로콜리도 잘 먹네~~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걸로는 엄마랑 얘기가 통하지 않아서 나는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다.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 아빠는 내가 편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같다.


내가 얼른 말하고 싶은 이유는 이런 때 외에도 사실 많다. 엄마 아빠와 더 친해지고 싶어서이다. 엄마는 서로 잘 알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늘 얘기한다. 캥거루 이모도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가 웃으며 내 겨드랑이를 번쩍 안아 올린다.


율아, 아~빠 해봐 아! 빠!


나도 힘을 내 무언가 말을 해보고 싶다.


멈마, 멈머, 엄마!


대결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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