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털 갑이라고 불렸던 여자

by 우비

12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는 날이었다. 출산과 육아를 위해 휴직이 아닌 퇴사를 결심하였다. 다섯 번의 퇴사 경험이 있었지만 그 어떤 퇴사의 이유보다 명쾌하고 속 시원했다. 아이가 자라는 앞으로 몇 년간은 육아에 집중하겠노라 선언한 나를 직장 동료들은 아낌없이 격려해주었다. 마지막까지 업무를 정리하고 가까웠던 동료, 선후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너는 육아도 잘할 거야.

그날 가장 많이 들은 응원이었다. 뭐든 잘할 거란 긍정의 응원은 힘이 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내가 유명한 조카바보이긴 해도, 아이들을 예뻐하긴 했어도 그것이 육아를 잘할 이유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궁금했다. 이미 육아를 경험한 엄마들에게 나의 어떤 면이 육아에 재능이 있어 보였던 것일까. 뭐가 됐든 좋은 건 역시나 좋은 거니까 나도 그러리라 되뇌었다.

그래, 나는 잘할 거야.

눈부신 가을날 아이가 태어났다. 병원과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생후 한 달도 안된 아이는 자주 배가 고팠고, 배고프지 않은 시간에는 잠을 잤으며 잠이 깨면 울었다. 아이를 낳은 나의 몸은 여전히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앉아도 아프고 누워도 아프고, 손목 허리는 아이를 안느라 매일 시큰거렸다. 나이를 탓했다. 마흔 살 가까워 아이를 낳은 몸이라 회복이 더뎠다. 아픈 몸과 고된 육아의 나날은 마찬가지로 나이 덕으로 버텼다. 몸이 고된 것쯤이야 직장생활을 할 때도 늘 그랬기에 괜찮았다. 나에게는 이런 피곤함쯤은 버틸 인내력이 있었다. 순탄하지 않았던 12년의 직장생활을 거치며 쌓인 내공이었다.


꿈꾸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가 된 날. 입사 첫날부터 밤을 새웠다. 회사의 중요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막내 사원이라도 써야 할 카피가 많았다. 일이 숙련되지도 않았기에 속도는 더디고 써가는 광고카피마다 퇴짜를 맞아 이튿날도 밤을 새웠다. 밤을 새우는 날은 잦았다. 어떤 때는 아예 갈아입을 옷을 챙겨 출근하기도 했다. 삼사일쯤 회사의 간이침대에서 자고 일하고 반복하면 일주일새 몸무게가 삼 킬로그램쯤 줄기도 했다. 광고회사에 다닌 5년이 매일 그렇진 않았지만 대부분 생활이 불규칙적이었고 몸이 고됐다.

몸이 힘든 것은 나았다. 카피라이터는 끊임없이 설득을 해야 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나의 아이디어를 설득해야 했고, 그 후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회사 사장님, 최종은 가장 어려운 광고주를 대면해야 했다. 지친 몸의 에너지를 짜내어 설득에 집중하면 칭찬받는 날도 있었지만, 패배를 맛보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그야말로 멘털이 너덜너덜해졌다. 매일이 설득의 연속이었고, 늘 바짝 긴장된 상태였으며, 몸보다 정신이 피곤했다.


육아도 초반에는 몸이 힘들었다. 졸린 잠을, 아픈 어깨를 견뎌내야 하는 나날들. 돌이 가까워오니 달라졌다. 아이는 고집이 생겼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온 힘을 다해 거부했다.



아침부터 이유식을 안 먹겠다고 게워내며 한바탕 대치전을 치른 날이었다. 겨우 달래니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혼자 현관으로 기어간다. 기는 아이를 안아 방으로 데려오자 팔을 뻗으며 자지러지게 운다. 우는 아이를 과일즙의 달콤함으로 진정시키자 이번에는 온 이불 위에 과일을 뿌려 방을 엉망으로 만든다. 돌아서면 울고, 달래고 나면 어지르는 저지레의 연속. 꾹꾹 참고 있던 인내심에 뚜껑이 열렸다.

야~~~~~~~~~!!! 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얼음이 되었다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가 울건 말건 내가 울고 싶었다. 이렇게 멘털이 털리기는 처음이었다.
"휴, 인내심이 바닥을 쳐요."


육아 선배인 전 직장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다.

"팔 개월 만에 처음으로 화를 냈다고? 역시, 잘 참는구나 너. "



육아를 시작하며 대단한 포부는 없었지만 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자는 작은 다짐은 하였다. 몸이 힘든 것, 마음이 힘든 것도 아이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나의 현실이 문제라 생각했다. 스스로 어려움을 탈출할 문을 찾으면 될 것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육아기간의 어려움은 시간만이 해결할 것이란 결론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육이기간 평정심을 갖는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내가 육아를 잘 해낼 거란 근거가 멘털이었다니.

하지만 빗나간 예측이었다. 아이에게 처음 화를 낸 날 이후 수시로 멘털이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해도 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육아로 받는 스트레스에 늘 인정받았던 직장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화를 더했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 언제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던 방랑병도 슬금슬금 존재감을 드러냈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읽고 싶은 책을 하루 종일 읽는 시간, 날씨 좋은 강변을 조깅하는 자유도 필요하다고 내면에서 소리쳤다.


평정심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표류할 것만 같았다. 다시 떠내려가는 멘털을 부여잡을 밧줄이 필요했다. 그 누구도 던져주지 않는 밧줄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막막한 채로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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