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어 배가 싸르륵 싸르륵 아프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 유도분만을 위해 병원에 가야 했다. 몇 시간 견디면 병원에 갈 시간이니 남편을 깨우지 않고 참아보기로 했다. 처음 경험할 출산의 과정은 이미 책과 인터넷의 글들로 꼼꼼하게 익혀두어 무섭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진통을 느끼고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욕심을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무사히 출산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새벽의 분만실 병동은 조용했다. 산모들의 괴로운 고성과 분주한 의료진들로 정신없을 줄 알았는데 복도 가득 잔잔한 클래식 음악만이 적막을 채우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봤던 긴장감이 전혀 없는 평온한 공간이 오히려 낯설었다. 분만을 위한 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핑크색 원피스. 병원의 환자복 치고는 밝고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를 맞은 상태라 배는 새벽보다 조금 더 아팠지만 산책하듯 병동 곳곳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한참을 걸어 다니던 중 이제 막 출근하는 담당 의사와 마주쳤다. 며칠이 걸릴지 모를 출산 과정을 지켜줄 나의 은인이 반가웠다.
“아직 애 낳을 사람 얼굴이 아니네. 좀 더 운동하고 계세요. 나중에 만나요”
분명 삼분에 한 번씩 아랫배를 쥐어짜는 것처럼 아픈데 아직 멀었다니, 얼마나 더 아파야 아이가 나오려나 두려워졌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 두어 시간이 지났다. 나의 걱정, 의사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세상으로 나오려는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다. 내진을 하던 간호사는 곧 출산을 할 것 같으니 분만 침대가 있는 수술실로 옮기겠다고 했다. 수실실은 아늑하고 자그마한 호텔방 같은 분위기였다. 벽면 한쪽에 잔잔한 바다가 그려진 유화 액자가 걸려있고 남편이 앉을 소파와 TV가 놓여있었다. 우리가 수술실의 이색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감탄하는 중에도 아이는 열심히 세상에 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출산이 임박한 두세 시간은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지만 엄마가 되려면 이쯤은 견딜 수 있다며 이를 악물었다. 하루 종일 친언니처럼 돌봐주던 수술방 간호사가 퇴근하기도 전에 아이는 세상으로 나왔다. 그날의 분만실 산모 중 가장 고령의 산모인데 아이를 제일 순조롭게 낳았다며 한 팀이 된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들떠서 자축했다.
새끼 강아지처럼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가 내 품에 안겼다. 처음 보는 내 아이. 감격이다. 초음파 사진으로 아이의 얼굴을 미리 봤지만 실제 만난 아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코가 나를 닮은 것도 같고, 입이 남편을 닮은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는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아 낯설었다. 반갑다고 해야 할지 솔직히 어색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 눈물이 나고 그래야 정상 아닌가?’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 엄마라는 호칭이 낯설었다. 산후조리원의 수유실에는 핑크빛 입원복을 입은 엄마들이 하얀 속싸개에 꽁꽁 싸인 아이를 안고 있었다.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조그마한 아이와 눈을 맞춘다. ‘저 눈빛이 모성의 눈빛인가?’ 묻고싶었다. 출산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도 아이가 아픈 데 없이 잘 크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내 품에 안겨있는 아이는 너무나 예쁘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 보다는 내 몸이 아프고 피곤해 오히려 무척 괴로웠다.
‘모성은 괴로움도 느끼지 못할만큼 큰 마음 아닌가?’
여전히 의문인 채로 아이보다 내 걱정이 먼저인채로 산후조리원 생활이 끝났다.
집으로 온 후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인형만 한 아이를 이제 내가 안고, 씻기고, 먹이고 재운다. 아이는 불편해서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새로운 방이 낯설어 울고 몇 날 며칠을 내 품에서 울었다. 아이를 낳기 전 상상했던 육아의 과정들은 현실성이 없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서툴렀고, 엄마가 처음이었고, 내 아이인 이 조그마한 핏덩이가 애처로웠다.
우리는 운명의 룸메이트라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와 얼른 친해져야했다. 울음으로 나에게 호소하는 불편함을 얼른 알아채야 했다. 룸메이트도 이런 룸메이트가 없었다. 식성, 잠버릇, 성격까지 세심히 파악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틈이 없었으므로 ‘모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도 한동안은 잊고 지냈다. 나의 기질, 성질 따위는 꾹꾹 눌러놓고 아이와 친해지기 위한 백일여의 시간이 지났다.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그즈음 아이는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기도 했다. 내가 안아주면 잠을 더 곤히 자고, 분유병을 물리면 기분 좋게 쪽쪽 입술을 오므리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백일의 기적이구나!’
새벽녘 일어나 아이의 분유를 먹이며 맑은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열심히 먹이고 키운 덕에 오동통 살이 오른 볼이 예뻤다. 남편을 빼다 박은 얼굴에는 내 표정도 얼핏얼핏 보였다. 아이는 더 이상 내 품에서는 울지 않았다. 문득 모성에 대한 의문을 늘 달고 다니던 내가 떠올랐다.
‘그래, 여기가 제일 편한 곳이지? 내가 니 엄마잖아.’
모성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가 왜 가볍지 않은지 그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산통은 열 시간이었지만 엄마의 마음을 알기 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마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