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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밤 Dec 26. 2022

살아있다고 느끼는 엉뚱한 순간

손끝이 아물었다.


3주 전쯤 당근을 채 썰다가 채칼에 오른쪽 엄지 손가락 끝을 같이 썰었다. 선득한 느낌에 놀라 으앗 소리를 냈었고 놓쳐버린 당근은 살짝 떠올라 허공을 날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손끝에선 핏방울이 굵직하게 맺혔다.


당근을 썰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맺힌 핏방울이 엄지손가락의 지문 사이사이로 번져가는 걸 보고 혼자서 혀를 쯧 찼다.


다친 상처가 아프다고 징징댈 누군가도 없는 1인 가구인 나는 잠자코 휴지로 손끝을 돌돌 말아 놓고 피가 멈추길 기다렸지만 빨갛게 젖어가는 부분이 크게 번질 뿐 금방 지혈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얼른 소독을 하고 밴드로 동여매듯 해놓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어

휴지를 떼고 찬찬히 살펴보니 베여 벌어진 틈새가 제법 깊었고 벌어진 사이로 붉은빛이 보였다.

겉으로 보이는 피부와 살갗 그 아래, 외부에 노출되서는 안될 것을 본 듯해 아득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간해서 쓸 일이 없어 서랍 깊숙이 넣어놨던 소독약을 꺼내 왼손으로 잡고 오른쪽 엄지손가락 위로 졸졸 흘려보냈다. 피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었고 마데카솔을 바르자 투명하고 진득한 연고는 피와 섞여 빨간 무엇을 바른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무시하고 밴드를 칭칭 동여매듯 했는데 구급상자를 정리할 때쯤엔 이미 밴드의 폼 부분이 다 붉게 젖어버려 밴드를 떼내고 다시 한번 연고를 바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첫번째 밴드 바르고 구급상자 닫기도 전에 벌써 피가 다 번졌다

두 번째 밴드를 발랐을 때에도 밴드의 폼이 피로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채 썰던 당근을 마저 썰고 당근샐러드를 만들고 아침 식사를 완성시켜야 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 했다. 아까 싱크대 위에 올려놨던 당근을 물로 부시고 다시 오른손으로 거머쥐자 베인 손끝이 욱신했다. 종이로 베었을 때랑은 또 다른 강도의 아픔이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픔에 '여태까지 채칼에 썰려나간 당근들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침 식사를 마쳤을 때쯤 피는 완전히 그친 것 같았지만 통증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아침저녁으로 씻을 때, 일기 등을 적으려고 펜을 잡고 힘을 줬을 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람이란 보통 손 끝까지 힘을 주며 생활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회사에서 종이에 살짝 베었을 때는 연고나 밴드도 바르지 않고 2-3일만 지나도 딱지가 올라오고 혹은 베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기도 했던 것 같은데 채칼에 당근과 함께 베임을 당한 살은 일주일이 지나도 완전히 아물지 않는 것 같았다. 아픔이 느껴질 때마다 아직 벌어져있는 살과 살의 틈을 들여다보면 붉은 선처럼 무엇인가 보였다.


그래도 막 손을 베고 피가 멈추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나은 상황이지. 아픈 손 끝보다 마음을 먼저 달랬다.


우리 아버지는 와파린이라는 항응고제를 드신다. 약학용어사전으로 항응고제를 찾아보면 '혈액의 응고능력을 감소시킴으로써 혈관 내에 비정상적으로 일어나는 혈전의 형성을 방지하는 약물'이라고 나와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아버지의 종아리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퉁퉁 붓기 시작했는데 그것의 원인이 바로 혈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혈전의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 항응고제를 드시는 중인데 그렇게 되면 출혈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중에 출혈이 생기면 지혈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와파린을 복용하시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음식도 가려 드시는 것들이 있다. 녹색 채소 등 비타민K가 많은 음식은 와파린의 항응고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되도록 드시지 않는다고 했다. 음식 섭취도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를 들으며 우리 아버지에게 피가 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고, 요새도 아버지께 영양제를 선물하고 싶을 때면 이것은 괜찮을까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다치면 피가 나고, 어느 순간에는 피가 멈추고 그 자리에는 딱지가 생기고 간질간질하던 딱지가 떨어지고 나면 새 살이 돋아나는 회복의 순서가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주어진 줄로만 알았다. 굳이 바라지 않아도 무난히 누릴 수 있는 섭리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내 아버지의 종아리를 보며, 가끔 티브이에서 내가 이름조차 다 외지 못하는 어떤 병마와 싸우는 환우들을 보며 자연한 건 줄만 알았던 회복의 순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끝이 베인 후 피가 나고, 그것이 멈추고, 점차로 새살이 돋는 것은, 새살이 돋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절기면 인후염에 걸리고, 조금 과하게 뛴 것 같은 날이면 무릎이 아픈 부실한 몸뚱이지만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회복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내 몸과 부모님과 온 세상에 감사해야 한다고, 어느 순간 다치고 나음을 경험할 때마다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을 넘어가며 유독 아픈 곳이 많아지는 것 같아, 하루가 다르다는 언니오빠들의 말이 과연 틀린 것이 아니구나 싶어 나이 듦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던 요즘이지만

 

오늘만큼은 '살아 있구나.' 하고,

'회복할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하고

어느덧 깨끗하게 아물어있는 엄지 손가락 끝을 몇 번이나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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